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격변기 알바니아 소녀의 기록 [서평]

레아 이피 런던정경대 교수 에세이집
공산주의 알바니아에서 유년시절 보내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의 자유 추구
"스탈린을 껴안았던 그날까지, 나는 자유의 의미를 스스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레아 이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교수가 쓴 <자유>는 가장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 중 하나였던 알바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쓴 일기 등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간 국가의 격변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나간다.유년시절부터 강력한 사상 교육을 받으며 자란 이피에게 공산주의는 자유 그 자체였다. 스탈린은 그에게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인민을 해방한 영웅이면서, 푸근한 눈웃음을 가진 따뜻한 지도자였다. 거리에서 스탈린주의에 반발하는 시위대를 마주친 이피는 공원으로 도망쳐 스탈린 동상을 껴안았다.

물론 공산주의 사회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식료품을 사기 위한 줄은 늘 길었다. 사람들은 빈 코카콜라 깡통 때문에 싸움을 벌였다. 이웃들과 함께 파티를 하며 지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고, 그 누구도 거론해선 안 될 금지된 대화 주제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상 교육에 절여진 '꼬마 공산주의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1990년 12월, 알바니아에서도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됐고, 자기 의지대로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당의 지시에 따르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다.그러나 자본주의가 약속한 자유는 얼마 가지 않았다. 회사들이 파산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대규모 다단계 금융사기로 국민 상당수가 재산을 잃었다. 학교도 문을 닫았다. 불안한 국내 정세는 곧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피와 그의 가족은 공산주의 체제 하의 억압과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을 겪어야 했다. 이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1990년에 우리는 가진 것이 희망밖에 없었다. 1997년에 우리는 희망마저 잃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겪으며 성장한 이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에겐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을 위한 자유가 절실했다. 책은 그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알바니아를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두가지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모순에 직면했는지를 평범한 소녀의 눈으로 상기시키는 책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