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에게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묻는다면

[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하지현 지음, 마티스블루, 2024
10년쯤 일하고 나면 전문가가 될 것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2~3년 차 편집자 시절의 이야기다. 신입의 티를 막 벗어나 각종 실무가 조금 손에 익어서, 친구를 만나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업계 이야기며 용어들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며 젠체하던 시기다. 하지만 속으로는 뛰어난 선배들의 활약상을 부러워하며 ‘나는 언제쯤 저렇게 프로페셔널해질까’ 의기소침하곤 했다.

막상 10년 차가 되고 보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에 허덕였다. 관리해야 할 팀원이 생겼고, 타 부서의 업무 요청에 답하다 보면 내 일은 뒷전이 되었다. 좋아하던 편집 업무는 능숙해졌지만, 새로운 방식을 찾기보다는 하던 대로 큰 문제 없이 마무리하는 걸 우선하다 보니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스타 편집자들이 넘쳐나는데 내가 만든 책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으니, 자존감이 떨어졌다. 점점 출근길이 고통스러워졌다. 재능도 없는 것 같고 열정적이지도 않은데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고민이 쌓였고 결국 육아를 핑계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런 권태에서 오는 무력감을 심리학에서는 ‘보어아웃(bore out)’이라고 한단다. 지루하다는 뜻의 보링(boring)과 번아웃을 합친 말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는 넘지 못할 벽을 맞닥뜨린 기분에 휩싸인다. 경력을 지속하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과 좌절감이다.

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는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에서 일을 잘하고 싶지만 일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보어아웃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든든한 조언을 해준다. 그 자신이 30년 차 직장인으로 겪은 경험과, 일에서 얻은 스트레스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풍부히 엮어 초보 직장인부터 관리자의 위치에 오른 이들까지 두루 새겨들을 이야기들을 담았다.
도서 &lt;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gt; / 사진출처, 교보문고
일이 재미있지 않고 열정적이지도 않은 사람이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에 따르면 그렇다. 날마다 새롭고 짜릿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신 매일의 업무에서 작은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하는 태도를 지니기 위해 노력하라. 업무의 순서를 바꿔보거나, 할 수 있는 선에서 익숙한 것을 낯설고 새롭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작은 노력이지만 보어아웃에서 탈출하게 해주고 내 일에서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하지현 교수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점은 자신에게 관대해지라는 것. 열정을 다하는 동료에 비해 무덤덤한 자신이 부족해 보인다면? 그래도 괜찮다. 열렬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모든 업무에 온 힘을 다하는 건 번아웃을 앞당길 수 있다. 관성적으로, 감정을 덜 쏟아도 되는 일들은 그렇게 흘러가게 두는 게 맞다.

진심으로 일을 좋아한다면 일을 적정온도로 대하는 방법, 일의 강약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힘쓰라고 이 책은 말한다. 모든 일은 결국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