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미사 B단조'… 음으로 쌓아 올린 위대한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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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우리나라 고음악 연주단체인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이 연주하는 바흐의 <미사 B단조>(BVW232)의 공연이 있었습니다.지난 해에 이들이 연주한 바흐의 <마태수난곡> 공연이 아주 신선하여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고음악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스즈키 마사아키의 지휘로 바흐의 불후의 명작인 <미사 B단조>를 연주한다는 소식에 오래 전부터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공연이었습니다.아시다시피 바흐의 <미사 B단조>는 그의 수난곡들이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과 함께 그가 남긴 교회음악의 위대한 유산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그의 수난곡에 담긴 고난과 슬픔,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담긴 축제적 기쁨과 구원의 영광 등 진폭이 큰 스펙트럼의 다양한 신앙적 감정들을 가톨릭의 전례문을 통해 절묘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하여 음악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 서울바흐축제
이 작품은 베토벤의 장엄미사와 더불어 가톨릭의 미사 통상문을 토대로 한 대형 미사곡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베토벤의 장엄미사처럼 처음부터 한 작품으로 구상된 것이 아니라, 바흐가 그의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오래 전에 따로 작곡하였던 키리에와 글로리아('드레스덴 미사'), 그리고 그 보다 더 이전에 작곡하였던 상투스 등을 그대로 차용한 토대 위에 새로이 크레도(니케아신경)와 베네딕투스, 아그뉴스 데이 등을 추가로 작곡하여 전체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대의 최고의 가수들과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전범과도 같은 카를 리히터의 음반(Archiv)을 필두로 하여 독특한 개성의 첼리비다케의 실황(EMI)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자기만의 해석을 담은 다양한 연주를 남겼습니다.그리고 시대악기에 의한 연주 역시, 경건한 레온하르트(DHM), 탐미적인 민코프스키(Naive), 현장감이 넘치는 녹음의 에비(Proprius), 엄숙하고 균형미가 넘치는 코헨(Hyperion), 최소 편성에 의한 리프킨(Nonesuch)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의 좋은 연주들이 많이 있습니다.이번 공연은 음반이 아니라 실연을 통해, 그것도 시대악기 연주로 바흐의 이 위대한 걸작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데다가, 바흐 음악에 관한 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고 이미 콜레기움 재팬과 함께 이 작품의 음반(BIS)을 발매하여 호평을 받은 적이 있는 마사아키가 지휘를 맡았다는 점에서, 과연 그가 우리나라의 젊은 고악기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국내 애호가들 사이에 아주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습니다.이윽고 마사아키가 박수와 함께 포디엄에 오르고 바로 키리에(Kyrie)의 첫 아다지오가 장엄하게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정갈하면서도 순도 높은 음향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 잡았는데, 그 순간 마사아키가 이 곡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갈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1부에서 노래된 '키리에'와 '글로리아'는 바흐가 오래 전 1733년에 작센의 선제후 아우구스투스 2세의 죽음과 함께 그 뒤를 계승하게 된 아우구스투스 3세에게 궁정음악 감독이 자리를 구하며 작곡하여 바쳤던 곡입니다. 혹자는 마치 레퀴엠과도 같은 엄숙한 분위기의 이 키리에가 죽은 아우구스투스 2세의 죽음을 기리는 뜻도 있다고 하지만, 죄많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며 신에게 낮게 엎드려 부복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전례문(Kyrie)의 내용을 아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그레고리안 찬트의 선율에 기반한 4마디의 아다지오의 외침("키리에 엘레이손") 이후 플룻과 오보에 등이 연주하는 기악 파트의 인도에 따라 합창이 키리에 엘레이손을 매우 길게 푸가로 노래하는 라르고 부분이 뒤따릅니다. 첼리비다케는 이 부분에서 아다지오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마치 탱고처럼) 연주하는 기존의 연주 관행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신중하고 깊은 느낌을 담아 이 라르고를 연주하는 것이 바흐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에 더 부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이어진 소프라노와 알토(카운터테너)의 듀엣에 의한 Christe eleison(그리스도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제법 활기찬 템포가 적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소프라노(윤지)는 엄중한 가사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노래를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담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겠지요.
곡은 다시 Kyrie eleison으로 돌아가지만, (절규와도 같은 외침으로 시작한 처음의 키리에 엘레이손과 달리) 팔레스트리나 풍의 푸가에 의해 차분하고도 경건하게 울려퍼지는데, 마지막 울림에 속죄에 대한 확신마저 느껴지는 이 곡 역시 연주자들이 아주 잘 마무리하여 이어지는 곡들에 대한 기대치는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키리에에 이어지는 글로리아(대영광송)는 3위일체의 신학적 개념을 토대로 모두 9(3x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흐는 합창과 합창 사이에 다양한 악기들이 독주 등으로 가세하는 아리아와 이중창을 배치하여 다채로운 감정들을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글로리아의 첫 곡 '하늘 높은 곳에서는 주님께 영광'은 (이전의 어두운 분위기를 일신하듯) 팀파니와 트럼펫 등이 축제적 분위기를 돋구는 것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의 서곡을 연상케 합니다. 가사 또한 예수의 탄생 당시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하늘의 천사가 들려준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바흐는 <미사 B단조> 전곡을 완성하기에 앞서 오래전에 작곡하였던 이 글로리아의 일부 곡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1745년경에 아래와 같이 성탄축일의 라틴어 찬양곡을 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날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의 트럼펫과 팀파니는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표현이 아쉽기는 했으나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인 기량으로 글로리아의 첫 두 곡("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을 잘 소화해내었습니다.
이어 소프라노가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함께 Laudamus te(당신을 찬양합니다)를 부르는데, 소프라노 윤지의 퓨어 톤의 청아한 목소리가 빛을 발하였고, 악장 백승록 역시 바로크 바이올린의 소박하면서도 투명한 울림으로 소프라노의 노래를 아름답게 꾸며주었습니다.
무대에 나왔던 소프라노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성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인 Gratias agimus tibi가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노래하는데, 특히 팀파니와 트럼펫이 화려하게 가세하는 이 감사의 노래는 이 미사곡의 맨 마지막 Dona nobis pacem(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에 차용되어 천국적 평화와 기쁨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합창 이후 다시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과 그 아들 성자 예수님을 노래하는 Dominus Deus가 소프라노와 테너의 이중창으로 아름답게 노래되고, 다시 합창이 그윽한 선율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구하면(Qui tolis peccata), 그 다음에는 다시 속죄를 구하는 알토(Qui sedes)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베이스의 솔로(Quoniam tu solus Sanctus)가 이어진 다음 마지막에는 다시 합창이 성령 하나님 등을 노래하며(Cum Sanctu Spritu) '글로리아(대영광송)'은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합창과 합창 사이의 솔로들의 노래를 꾸며주는 악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속죄를 구하는 알토의 노래에는 오보에의 선율이 간절함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였고, 예수의 영광을 노래하는 베이스의 노래에는 (중간에 무대로 들어온) 호른이 예수의 위엄을 노래하는 뒤로 마치 예수의 위엄과 대조되는 인간의 나약함과 비루함을 표현하듯 두 대의 바수운이 대조를 이루며 가세하는 장면도 큰 무리 없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이처럼 성악과 기악의 각 솔리스트들이 모두 상당히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가운데 합창과 합창 사이에 솔로들이 무대 앞으로 나아와서 노래하고 다시 들어가는 동선(움직임)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잘 이어졌는데, 이 역시 이번 공연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흐가 이전에 작곡하였던 드레스덴 미사 파트(키리에-글로리아)로 공연의 1부가 마무리되고 인터미션이 있은 다음 2부 니케아신경(Credo) 파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역시 글로리아(대영광송)과 마찬가지로 성부, 성자, 성령 3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총 9개의 곡으로 나누어 표현한 곡인데,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은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투명하고 정갈한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이 곡 역시 트럼펫과 팀파티가 가세하여 합창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찬양한 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Et in unum Dominum Jesu Christum)를 노래할 때는 (1부의 크리스테 엘레이손과 마찬가지로) 소프라노와 알토(카운터테너)의 이중창이 이어집니다.
그 후 합창이 성육신의 신비(Et incarnatus)와 십자가의 수난(Crucifixus)을 매우 신중하고도 깊은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데, '크루시픽수스'를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합창단의 날카로운 딕션이 아주 정교하여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Et incarnatus]
[Crucifixus]
지휘자 마사아키는 특히 수난을 노래할 때 일부 파트가 조금 큰 소리를 내자 손을 내저으며 여리게 연주하도록 지시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지휘 동작을 취하였는데, 이 부분은 전체 곡에서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에 이어 폭발적으로 부활이 노래될 때(Et resurrexit), 중간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신다는 내용을 베이스 독창이 노래하는 대목에서 독창자가 합창단에서 잠시 벗어나 무대 앞에 나와 노래하게 하는 설정도 참신하였는데, 이 대목에서는 헨델의 메시아에서 심판의 나팔을 노래하는 베이스의 서창이 살짝 오버래핑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진 성령을 찬양하는 베이스의 독창의 경우(Et in spritum Sanctum) 솔리스트의 발성이 깊이감이나 권위에 있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깔끔한 선율 처리는 좋았습니다.
그리고는 속죄의 세례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합창(Et expecto resurrectionem)을 끝으로 니케아신경 부분이 힘차게 마무리됩니다. 특히 이 마지막 합창에서 바흐는 처음에는 느리게 연주하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알레그로로 돌변하는 방식으로 죽은 자의 다시 살아남을 강조하는데, 연주에서 좀 더 강렬한 다이나믹의 대비가 아쉽기는 하였지만 이 부분도 대체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었습니다.
니케아신경 파트 이후 이어질 상투스의 6성부 합창을 위해 합창단이 자리배치를 다시하는 와중에 잠깐 다시 악기 튜닝이 이루어졌는데, 튜닝 조차도 어떤 질서에 따라 가지런히 움직이며 곡의 흐름과 분위기를 가급적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더군요.
6성부의 합창에 의한 이 상투스는 1부의 드레스덴 미사 보다 더 이전인 1724년에 작곡된 곡으로 연주하기에는 까다로운 곡이지만 정교하게 조율된 악기처럼 조화롭게 잘 마무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투스에 이어진 합창단의 오산나도 투명한 텍스쳐가 빛나는 합창이었고, 이어진 (트라베르소의 소박하고도 너무나 아름다운 울림을 배경으로 한) 김효종 테너의 베네틱투스 또한 미성에다가 표현력도 아주 깊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베네틱투스 이후 다시 오산나가 합창으로 외쳐진 후 마지막 Agnus dei가 알토(카운터테너)의 독창으로 노래되는데, 카운터테너 정민호는 비감어린 목소리로 어린양 예수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하는 간구의 절절함을 아주 잘 표현하였습니다.
이후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마지막으로 평화를 갈구하는 Dona nobis pacem이 서서히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바흐는 이 마지막 곡을 1부의 드레스덴 미사 중 글로리아에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Gratias agimus tibi를 다시 차용합니다. 혹자는 바흐가 마지막에 창작력이 고갈되어 이전 곡을 패러디한 것으로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기 보다는 바흐는 마음의 평화와 천국적인 기쁨은 인간 스스로 절대 만들어낼 수는 없고 오직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하늘로부터 허락되는 것임을 이를 통해 암시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에서는 마지막 트럼펫의 화려한 비상과 천지를 울리는 듯한 팀파니의 장엄한 울림이 매우 중요한데, 이날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시대악기를 대형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것에 따른 공간적인 한계도 있었겠지만) 트럼펫과 팀파니의 연주가 음량적으로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날 공연의 막바지에 트럼펫과 팀파니와 함께 이 마지막 합창이 장엄하게 울려퍼질 때 연전에 로마 출장 길에 성 베드로 성당을 찾았을 때 성당의 그 화려하고 장엄한 위용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서 살짝 소름마저 돋았습니다. 객석은 바흐가 음표로 쌓아 올린 이 위대한 성전의 아름다움 앞에 마지막 짧은 순간의 고요한 침묵으로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제대로 연주해내기도 쉽지 않고 또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직접 관람하기 쉽지 않은 바흐의 이 대곡을 시종일관 순도를 잃지 않으면서 정갈하면서도 장엄하게 전달해준 노장 마사아키 선생과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의 단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