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탈리아의 여성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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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뛰어난 심미안과 아름다움, 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은 한국과 이탈리아를 이어주는 다양한 공통점 중 하나다. 실제로 서울에서 세계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가 열렸던 지난주는 한국인의 예술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한 주였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매년 프리즈 기간에 맞춰 ‘이태리 앳 프리즈 서울’이란 행사를 진행한다. 이탈리아의 주요 갤러리가 프리즈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빌려 이탈리아 현대 예술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일종의 프리즈 전야제라고 할 수 있는 행사다. 나는 과거 여성 진입 장벽이 높았던 외교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주제를 ‘이탈리아 여성 예술가’로 정하고,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섯 명의 이탈리아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했다.필자는 오래전부터 비범하고 강인한,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매료돼 왔다. 대표적 인물이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다. 젠틸레스키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끔찍한 일을 법원에 고소했다. 그 시절 젊은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감당해야 했을 고초를 상상해 보라.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자신이 느꼈을 고통과 쉽지 않았던 투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냈다. 놀랍게도 그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으며, 바로크 시대 거장인 카라바조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여기서 한경 독자 여러분께 특별히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올해 11월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한국에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성 예술가들은 비단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됐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들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졌다.
한국에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힘쓴 윤석남 작가, 환경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깊은 내면에 이르기까지 심오한 주제를 담백하게 표현해낸 김수자 작가, 현대성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이불 작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예술적 언어로 인정받은 양해규 작가와 같은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에서도 기억돼야 한다.
개인적인 소견일 수 있지만, 여성으로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이 남성과는 다른 상상력, 창의력, 노력과 의지를 통해 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사유와 작품에 감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