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곳 vs 118곳…골목 숨어든 '흡연 난민'

서울 금연구역 늘며 너도나도 거리 흡연…지자체 '골머리'

흡연 막자 좁은 도로·구석으로
담배 연기·꽁초 쓰레기로 '몸살'

서초 48곳 vs 강남 0곳
자치구 14곳이 '흡연부스' 전무
주민 반발 우려해 설치 소극적
길거리 행인 피해 사실상 방치
"신개념 흡연공간 마련해야"
12일 낮 12시 서울역광장에 설치된 흡연부스는 직장인들이 내뿜는 연기로 자욱했다. 일부는 협소한 부스 대신 밖에 나와 흡연했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담배 냄새와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코와 입을 막은 채 발길을 서둘렀다.

서울의 흡연부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시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려면 부스를 더 설치해야 하는데, 지역주민들이 ‘결사반대’하고 있어서다. “담배 피울 곳이 없다”고 호소하며 골목으로 숨어든 흡연자들로 인해 이면도로는 꽁초 하치장이 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흡연부스를 획기적으로 늘릴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 반대 민원에 소극적인 지자체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에 운영되는 공공 흡연부스는 118개로 자치구당 평균 4.7개꼴에 불과하다. 시내 금연구역은 29만9000여 곳에 달한다. 금연구역 중 90%가량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실내 공중이용시설이다. 172만 명으로 추정되는 서울시 흡연자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금연구역이 아닌 곳을 찾아 헤매는 ‘흡연 난민’이 된 이유로 꼽힌다.

흡연부스는 그나마 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공공이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이다. 하지만 서초구만 비교적 많은 48개 부스를 운영할 뿐 대부분 자치구는 2~3곳만 두고 있다. 흡연율이 높은 중랑구 강북구 관악구와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구 등 14개 자치구는 흡연부스가 한 곳도 없다.

자치구들은 흡연부스를 새로 설치하려고 해도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민원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금연구역이 워낙 넓으니 주변 흡연자들이 모두 몰리는 ‘블랙홀 현상’ 때문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설치된 흡연부스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친다”고 했다. 2022년 서울시에서 자치구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한 결과 흡연부스를 설치해달라고 신청한 곳은 3개구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일부 자치구는 금연 정책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에 따라 흡연부스를 설치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강북구 관계자는 “금연구역을 늘리는 게 보건복지부 목표인 데다 흡연부스는 흡연을 권하는 의미로 비쳐 추가 설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 “획기적으로 늘려야”

그나마 설치된 흡연부스 대부분이 연기를 막지 못하는 개방형 구조여서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려는 부스 설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내외부가 차단되지 않다 보니 주변으로 연기와 냄새가 새나간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설치된 흡연부스 중 개방형과 부분 개방형이 103곳(87%)에 달했다. 서울시가 시청과 이어지는 지하철 시청역 4번 출구에 설치한 흡연부스도 개방형이다 보니 주변 보행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간접흡연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외부가 밀폐되고, 환기시설을 갖춘 폐쇄형 흡연부스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배 자체를 아예 금지하지 않는 한 흡연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이 맘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공간만 제공된다면 길거리에 버려지는 담배꽁초 쓰레기(하루 약 12t 추정)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2년부터 흡연구역을 확대하고, QR코드 등으로 흡연부스를 안내하는 금연정책을 펴는 서초구가 좋은 예다. 서초구 관계자는 “지하철역 등에 QR코드를 설치해 흡연시설을 안내한 결과 길거리 꽁초 쓰레기 수거량이 줄고, 간접흡연 민원도 감소했다”고 했다.신승호 대구보건대 환경보건과 교수는 “흡연부스를 늘리는 동시에 환풍 시설과 제연기 등을 설치하는 규정을 마련하면 외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