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려아연 공개매수 나선 MBK, 행동주의 펀드 흉내내나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영풍그룹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MBK는 영풍그룹 보유 지분 상당수를 매입해 고려아연 최대주주에 오르는 동시에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14.6%를 사들이기로 했다. 총 투입자금은 최소 9537억원에서 최대 1조9964억원으로 국내 공개매수 사상 최대 규모다. 성공하면 사실상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MBK는 지난해 말에도 한국타이어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번엔 시가총액 13조원대의 대기업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역시 75년 동업 관계를 뒤로한 채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벌이는 경영권 분쟁이 자초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를 대표하는 1세대 토종 PEF인 MBK의 최근 행보는 일반적인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 별반 다르지 않아 실망스럽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경영권 싸움의 틈새를 파고들어 단기 차익을 좇는 ‘머니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육성을 통해 장기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실물경제 성장을 지원한다는 PEF 도입 취지와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더구나 MBK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이 출자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수탁하는 수탁자로서 위탁운용사 선정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투자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돈으로 세계적인 국내 비철금속 제련업체를 공격하는 행동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해외 행동주의 펀드에 더해 국내 펀드의 기업 공습이 본격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는 전무하다. 이러니 국가 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회사들마저 적대적 인수합병(M&A) 대상으로 전락하고, 기업은 투자 등 생산적인 곳에 써야 할 자금을 상호출자 등 경영권 보호에 쏟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기업에도 포이즌 필(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등 최소한의 방패는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