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였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 7년간의 간병 기록 [서평]



돌봄 시스템 공백도 지적
"그럼에도 그 길은, 생각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노정이었다. 일곱 해에 가까운 세월을 나는 다그치고 재촉하며, 협박하고 회유하며, 애원하고 간청하며, 격려하고 조소하며 보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걷기를 강권했고, 책을 사다 안겼고, 억지로 퍼즐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동시에 증오하기도 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심장내과의인 샌디프 자우하르가 2014년 가을부터 7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잃은 아버지를 간병한 기록이다. 샌디프의 부친 프렘 자우하르는 인도계 미국인 과학자로 밀 유전학을 연구했다. 미국과학진흥회 회원이자 존경받는 과학자였던 프렘은 어느 날부터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고, 새로 산 금고 비밀번호도 가물가물했다. 가족사진 속 얼굴들이 문득 낯설게 보였으며 외출했다 집을 찾지 못해 길을 잃는 날도 있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저자는 아버지가 일상에서 마주쳐야 했던 상실과 혼란을 옆에서 목격한다.

이 책은 치매 환자 보호자가 겪는 일상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심신의 고통과 피로를 비롯해 정신적 스트레스, 경력 위기, 재정적 어려움 등 치매는 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의 삶에도 치명적인 균열을 낸다. "아버지는 통제가 안 돼", "아버지는 기억도 못하실걸", "아버지는 지금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야" 등과 같이 저자는 아버지에 관한 대화를 아버지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본인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후회한다. 간병의 고단함은 아버지가 그저 손상된 뇌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란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간병의 고통은 구조적인 문제에서도 비롯된다. 저자는 의료 시스템과 각종 지원사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겐 여전히 돌봄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와 남매들은 그마저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어중간한' 환자와 보호자의 처지를 보여준다.이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친에 대한 회고이자 간병 기록이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는 사적인 일기기도 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를 기억하기로 마음 먹은 저자는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 스스로보다 더 상세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버지가 쓴 책과 받은 상을 줄줄이 외웠다. 아버지가 당신을 괴롭히는 병보다 더 큰 사람이란 걸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치매와 뇌의 기능, 의료 시스템의 공백 등을 객관적인 문체로 전달하는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아들로서 슬픔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감사의 말에서 이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내가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독려하고 채찍질해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는 작가로서 나의 첫 롤 모델이었고, 일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주 많이 다른 방식으로, 나는 곧 내 아버지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