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런던엔 전 세계 반 고흐 명작들이 다 모였다

[arte] 조민선의 런던 리뷰 오브 아트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200주년
반 고흐: 시인과 연인들(Van Gogh : Poets & Lovers)
때때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은 예외다.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200주년 하이라이트는 ‘빈센트 반 고흐’였다.

9월 14일부터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 ‘반 고흐 : 시인과 연인들(Van Gogh : Poets & Lovers)’ 은 내셔널 갤러리가 공들여 준비한 깜짝 선물이다. 미국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등 유수의 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대표 작품들이 한데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티켓파워는 예상되는 바다. 지난 13일 내셔널 갤러리 회원들에게 선공개된 고흐 전을 보고 왔다.
내셔널 갤러리(런던) '반고흐: 시인과 연인(Van Gogh: Poets and Lovers)' / 사진=필자 제공
마치 연인처럼, 두 해바라기의 만남
반 고흐 '해바라기(Sunflowers)'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 사진=필자 제공
갤러리는 고흐의 ‘황금기’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그중 갤러리의 간판격인 <해바라기(Sunflowers,1888)>를 앞세웠다. 이번 전시에서는 런던과 필라델피아의 ‘해바라기’ 두 점이 나란히 걸린 모습을 최초로 볼 수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 중 갤러리에 공개된 작품은 5점. 런던, 필라델피아, 암스테르담, 도쿄 등지에 흩어져있다. 그중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해바라기(Sunflowers,1889)>’가 최초로 ‘해외출장’으로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와 나란히 걸리게 된 것. 마치 연인의 애틋한 만남처럼 느껴지는 큐레이션이다.
(왼쪽) 반 고흐 &lt;Sunflowers&gt;,1888, 내셔널 갤러리 소장 / 사진출처. ©The National Gallery (오른쪽) 반 고흐 &lt;Sunflowers&gt;,1889,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 사진출처. ©Philadelphia Museum of Art
이번 전시는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 보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기도 하다. 런던 해바라기는 예술적 완성도만큼이나 가치 급상승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100년 전 산 작품이 1세기 만에 1억 파운드(한화 약 1750억원, 내셔널 갤러리 추산) 가치로 폭발한 것. 당시 갤러리 측은 모던 아트를 선보이려면 고흐의 작품이 ‘키(key)’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정중하게 요청해 사들였다. 100년 전 고흐 작품을 아방가르드한 모던 아트라고 내다봤던 ‘뛰어난 감각’이 빛을 발한 것이다.

고흐 스타일의 핵심, ‘변형능력(transforming)’이번에도 큐레이터 코넬리아 홈버그와 크리스토퍼 리오펠레의 감각과 기획력으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개인 소장품 8점을 비롯해 61개 작품을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1888년 고흐가 남프랑스(아를, 생 레미)로 이주해 쏟아낸 2년의 결과물을 추렸다. 파리에서 흡수한 아방가르드 사조에 남프랑스의 풍광을 접목해, ‘고흐 스타일’을 완성했던 시기이다. 당시 고흐가 주로 그렸던 주제는 해바라기와 올리브 나무, 정신병원의 정원, 사이프러스 풍경, 노란색 집 등이다. 고흐 특유의 틀을 깨는 색감과 붓 터치로 그의 세계를 창조했다.

가디언은 전시 리뷰를 통해 “고흐가 이토록 위대한 것은 단순히 관찰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변형할 줄 아는 능력 때문”이라며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그의 세계로 재창조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 방식도 특별하다. 연대기 순으로 작품을 나열하지 않는다. 고흐가 ‘정원(The garden)’, ‘노란색 집(the yellow house)’, ‘몽마주르(Montmajour)’ 등 공간을 주제로 시간차를 두고 그린 그림을 나란히 보여준다. 그가 동일한 모티브를 어떻게 매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하는, 창조성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큐레이션이다.
예를 들어 정원을 주제로 한 <Garden with weeping Tree, Arles, 1888(위 이미지, 왼쪽)>과 <Weeping Tree,1889(오른쪽)>는 같은 장소에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스케치했다. 큐레이터는 “고흐는 같은 공간에서 그린 과거의 작품을 재해석(reinterpreting)하고, 재창조(reimaging)했다. 보이는 그대로 재현이 아닌, 그의 상상 속의 이미지를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비극에서 꽃 피운 ‘예술적 능력’

1888년 말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창의성이 오히려 극대화된 흔적도 모여있었다. 그곳에서 고흐가 창조한 세계는 비극이 아니었다. 현실은 병원 건물 밖 방치된 가든이었지만, 그의 상상 속에선 아름다운 가든으로 꽃 피었다.
(왼쪽) 반 고흐 &lt;The Garden of the Asylum in Saint-Remy&gt;, 1889 / 사진출처. ©Kröller-Müller Museum (오른쪽) 반 고흐 &lt;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at Arles&gt;, 1889 / 사진출처. ©Am Römerholz
<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at Arles, 1889>, <Roses, 1898>, <Undergrowth, 1889> 등의 작품에는 화려한 색감의 꽃, 강렬한 나무줄기, 반짝이는 햇빛으로 생동감을 넘치는 에너지를 표출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적 해석’은 오히려 최고에 도달했다. 정신병원에서 고흐의 스타일은 더 자유롭고 대담해졌고, 그의 세계는 보다 확장됐다.
(위) 반 고흐 &lt;Roses&gt;, 1898. / 사진출처. © 독립행정법인 국립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아래) 반 고흐 &lt;Undergrowth&gt;, 1889. / 사진출처. ©Van Gogh Museum Amsterdam
틀을 깨는 모더니스트의 면모는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 작품에서 유독 빛났다. <A Wheatfield with Cypresses, 1889>는 마치 휘핑 크림처럼, 휘감기는 모양의 흰색 구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현실은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었지만, 그가 창조한 사이프러스는 마치 춤추는 듯 동적인 매력이 넘친다. 가까이서 본 그의 붓터치는 생명력, 에너지로 점철되어 있었다. 고흐의 작품은 온라인에 박제된 이미지로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미술관에서 직접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존재했다.
반 고흐 &lt;A Wheatfield with Cypresses&gt;, 1889 / 사진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왼쪽) 반 고흐 &lt;The Olive Trees&gt;, 1889, MOMA 소장. / 사진출처. ©The Museum of Modern Art (오른쪽) 반 고흐 &lt;The Olive Trees&gt;,1889 / 사진출처. ©The National Gallery
<The Olive Trees, 1889>는 올리브 나무숲에서 역동적으로 꼬여있는 나뭇가지들이, 총천연색 하늘로 뻗어나가는 느낌을 담았다. 고흐는 생전에 “올리브 나무는 매우 독특해서 그 특징을 잡아내려 애쓴다”라며 “나무는 때론 은빛, 푸른빛, 때때로 초록, 청동빛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올리브 나무의 스케치(오른쪽)를 동생 테오에게 미리 보낼 정도로, 특유의 에너지에 천착했고 (그가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음악처럼 위로가 되는 그림을 원해
“그림에서, 나는 음악처럼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In a painting, I'd like to say something consoling, like a piece of music.)”

갤러리는 그의 생전 바람을 담아, 그가 고안했던 레이아웃으로 공간을 꾸몄다.
보스턴에서 온 작품 <La Berceuse(The Lullaby), 1889>는 벽면 중앙부를 차지하고, 양옆에 두 해바라기가 감싸고 있다. 생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세 작품을 나란히 그린 스케치를 보내며 “3개 작품이 함께 있으면 너무 환상적일 것 같다.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준다”라고 썼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 사진=필자 제공
큐레이터들은 이 작품에 묘사된 여성은 더 이상 ‘우편배달부의 아내’라는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모성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세 작품을 나란히 건 배치는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흐가 떠올린 구성 방식이다.

고흐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개별’을 넘어서 ‘맥락’으로 확대되기를 원했다. 각 작품들을 창조적으로 배치해, 음악의 주 영역인 리듬과 운율을 품기를 바랐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전시회의 그림들은 분명 강렬한 음악일 것”이라며 “당신을 순식간에 춤추게 할 만큼의 매력적인 음악으로 들릴 것”이라고 썼다.
반 고흐 &lt;La Berceuse(The Lullaby)&gt;, 1889 / 사진출처. ©Museum of Fine Arts Boston
무한의 세계를 창조한 고흐

남프랑스에서 2년간 이처럼 역동적인 작품들을 쏟아낸 뒤, 1890년 여름 고흐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유산들이 뿜어낸 에너지는 지쳐있는 영혼을 고양시키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한때 이렇게 썼다.

"나는 무한을 그린다(I paint the infinite.)"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남아 무한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무한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개관 2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갤러리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로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