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신약개발 프로그램 구축…채치범 포항공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형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 채치범(蔡治範)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18일 오후 3시34분께 건국대병원에서 혈액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9일 전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대 생화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3년 포항공대로 온 것은 1985년 12월 말부터 7년에 걸쳐 김호길(1933∼1994) 포항공대 초대 총장이 한국행을 설득했기 때문. 고인은 한 회고에서 "1992년 가을에 포항공대를 방문했을 때 김호길 총장이 문득 내게 몇 살이냐고 묻길래 52세라고 했더니 '채박사, 그 나이에 앞으로 노벨상 받을 만한 일을 하기 힘드니 포항공대에 와서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이소'라고 하셨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고인은 한국은 기초 연구도 약하고, 연구자원도 빈약한 만큼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을 이용해 펩타이드 라이브러리(peptide library)를 구축하고 이를 탐색해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것이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펩타이드는 체내 아미노산 구성 물질이다.

1994년 과학기술부에 이런 구상을 제시해 G-7 중과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과학재단 지원을 받아 포항공대에 펩타이드 라이브러리 지원 시설을 설립했다.

고인도 암 성장·전이 억제 효과가 있는 펩타이드와 뇌 독성이 없고 약 전달 효과가 있는 펩타이드를 개발했다. 2005년에는 가톨릭대 의대 성빈센트병원 김완욱 교수팀과 함께 병든 관절 조직에 공급되는 혈관의 성장을 막아 관절염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신개념의 치료약물 'dRK6'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dRK6'도 아미노산 6개가 결합된 펩타이드이다.

1998년 포항공대 부총장을 지냈고, 2000년에는 포스코의 바이오산업 진출 발판을 만들기 위해 포항공대에 생명공학연구센터를 설립하고 2005년까지 초대 소장으로 일했다. 2005년 건국대로 옮겨 2009년까지 이 대학 의생명과학연구원장으로 일했다.

2009년 신약 물질로 주목되는 세포밖소포체(extracellular vesicle)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엑소좀(Exosome)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 2018년까지 활동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5호실에 마련됐다.

21일 오전 8시30분 발인을 거쳐 분당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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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