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게 패션계 대유행이 되는 절대법칙, 파리에 있다

[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
유행을 만드는 사람들,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들!
어처구니없는 유행이지만 새로웠다!

1910년대 패셔니스타들은 종아리 부분을 리본이나 밴드로 졸라매는 드레스를 입었었다. 프랑스 디자이너 폴 뽀아레(Paul Poiret)는 페티코트로부터 여성을 해방했지만, 발목 부분이 아주 좁은 호블 스커트(Hobble Skirt)를 유행시켜서 여자들의 다리에 족쇄를 채웠다.그는 1908년 여자로는 처음으로 모터가 장착된 비행기 승객인 에디스 오길비 버그(Mrs. Edith Ogilby Berg)의 복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그 당시 비행기에는 탑승 의자만 덜렁 붙어있어서 치마가 바람에 날릴까 봐 치마의 종아리 부분을 끈으로 묶었었다.

호블 스커트를 입고는 잘 걸을 수도 없고, 넘어지고, 기차나 자동차에 올라갈 때도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10여 년간 유행했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왼쪽, 가운데] 호블 스커트 / 사진출처. americanahistory.cafex.biz [오른쪽] "호블 스커트 ! 그게 뭐죠? 속도 제한 스커트야!'' 호블 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자를 가리키는 남자, 엽서(1911년경)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오베르에서 이륙하기 직전 윌버 라이트 옆에 승객으로 비행한 최초의 미국 여성 에디스 오길비 버그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유행을 만드는 트렌드 예측 연구소

과거에는 연예인 같은 셀럽, 명품 브랜드의 신상이 유행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전문 트렌드 예측 연구소에서 사회 흐름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제시하여 셀럽이나 브랜드들도 대부분 이를 따르는 추세이다. 물론 파워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 붐을 일으켜 유행을 만들기도 한다.

런던의 더블유지에스엔(WGSN), 파리의 랠리로디(Nelly Rodi), 르에르빼르(Leherpeur), 빼끌레르스(Peclers) 같은 트렌드 컨설팅 에이전시에서는 다음 시즌에 유행할 트렌드를 분석하고 제시해 준다. 대기업들은 고액을 지불하고 소비자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유형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트렌드북을 구매하여 다음 시즌 컬렉션을 만들고 그를 기반으로 마케팅과 영업 전략을 세운다.파리에서 패션, 럭셔리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르에르빼르 컨설팅 에이전시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미팅을 통해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을 듣고 직원들이 각자 자료 수집 후 다시 모여 '에르 뒤 떵(air du temps = 시대의 공기 즉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들)'을 분석했다. 기사를 스크랩하고, 전시와 영화, 연극을 관람하고, 신간 베스트셀러 서적을 확인하고, 새로 오픈한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백화점을 방문하여 그 당시 유행하는 것들을 모아 정리 분석하여 트렌드 북을 만들었다.
Color Trend book SS 2026, Perclers / 사진출처. PeclersParis 홈페이지
2006년 개봉되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세계적인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가 패션 코디를 하며 파란색 벨트 두 개를 들고 지나치게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에 그녀의 여비서 앤드리아는 실소를 터트린다. 미란다는 그녀에게 "네가 입은 옷의 색이 무슨 색인 줄 알아? 세룰리안 블루야. 그 색깔 하나를 정하기 위해 수많은 뉘앙스의 파란색이 디자이너의 손에서 재창조되었고, 그중 최고로 멋진 파란색이 결정되어 네가 마트에서 그 스웨터를 사서 입게 된 거야"라며 패션산업의 유행 생태계를 설명했다.

이는 하이패션부터 스트리트 패션까지, 세룰리안 블루의 특별한 여정을 통해 럭셔리 산업의 트렌드들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올겨울 Men’s collection 패션위크에는 미란다의 세룰리안 블루가 중요 컬러 트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왼쪽] men’s collection F/W 2024-25 [오른쪽]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세룰리안 블루 스웨터를 입은 앤 해서웨이 / 사진출처. ©Valentino, NYLON 홈페이지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는 또한 사회 문화, 경제 소비 형태, 생활 패턴, 심리 분석의 전문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고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면서 양복 시장이 불황을 맞자 넥타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금지령이 내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프랑스 여자들은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홈웨어를 변형시킨 편안한 스타일을 찾아 가볍고 구김 가지 않고 신체를 보호하는 신소재를 사용한 포스트 팬데믹 스타일이 탄생하였다.

테라 코스모스(TERRA COSMOS), 우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우주로!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수년간 친환경, 리사이클, 자연, 웰빙 등이 트렌드로 두각 되었으나 이러한 트렌드는 이제 유행이라기보다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의무 사항인 클래식이 되었다.
프랑스 트렌드 예측 연구소 빼끌레르스는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리빙 페어 메종&오브제(Maison & Objet)의 트렌드 테마로 <테라 코스모스, 우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우주로>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위] 테라 코스모스 [아래] I-Total 전등 101Copenhagen / 사진출처. 메종&amp;오브제 홈페이지
현재 패션 유형, 레스토랑이나 호텔 그리고 리테일 매장들의 리빙 유형 등을 분석한 결과 AI 가상 현실을 통하여 지구를 떠나 광활하고 미스터리한 환상의 우주를 체험하는 유행 경향이 대두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60년대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꾸레쥬(Courrège)가 유행시킨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를 재해석하는 유형의 트렌드들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Le Palais Bulles de Pierre Cardin / 사진출처. palaisbulles 홈페이지
Space Age Fashion: Futuristic and Stunning Designs by André Courrèges from the 1960s / 사진출처. RareHistoricalPhotos 홈페이지
[왼쪽] Collaboration IKEA &amp; Ólafur Elíasson, 2023 / 사진출처. 이케아 홈페이지 [오른쪽] Unplug cocktail Bar, Paris, 2023 / 사진출처. Unplug 홈페이지
Collaboration Mercedes Benz &amp; Moncler, 2023 / 사진. ⓒMercedes-Benz AG
[위] Control bar : Panda nada, Zhangzhou, 2022 / 사진출처. MUUUZ 홈페이지 [아래] Restaurant Alchemist, Copenhagen, 2020 / ΛLCHEMIST 인스타그램
인테리어 디자인과 라이프 스타일의 트렌드를 제시하는
유럽 최대의 리빙 페어 메종&오브제(Maison & Objet)

메종&오브제는 세계적인 디자인, 홈 데코 및 라이프스타일 업계 전문가들이 한데 모이는 중요한 행사이다. 국제적 교류 활성화, 마켓 플레이스 플랫폼 MOM(Maison&Objet And More)을 운영하여 박람회에 참가한 브랜드들의 인지도 향상과 네트워킹 그리고 판매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촉진하고자 한다.

지난 9월 5일부터 10일까지 파리 빌빵뜨 박람회장(Parc des expositions Villepinte)에서 열린 메종&오브제는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 최대 인테리어 박람회로 일컬어진다. 1868년 설립된 프랑스 공예 조합(Ateliers d'Art de France)과 페어 전문 기획회사인 알엑스 프랑스(RX France)의 자회사 사피 (SAFI)에서 주관하며 1994년부터 매년 1월과 9월 두 차례씩 리빙 트렌드와 디자인 트렌드를 제시하여 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에서도 67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한국공예 디자인 문화 진흥원, Seoul, My Soul, 광주디자인 진흥원 같은 기관 공동관에 선정된 브랜드들을 소개하거나 한국 전통 자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February Mountain, 공간의 모서리에 부착하는 모던한 디자인의 시계와 십자가를 선보인 Mosery, 엄마가 사용하다 딸에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과 견고성이 높은 친환경 액세서리 브랜드 ToforTo 등 단독 부스들도 바이어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왼쪽] Mosery / 사진출처. Mosery 인스타그램 [오른쪽] ToforTo / 사진출처. ToforTo 인스타그램
이번 메종&오브제에는 많은 공간이 비어있고(약 200 참가 브랜드 감소 -14%) 방문객 수도 예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적어(약 1만 5천 명 감소 -25%) 한산하기까지 했다. 창조적인 새로운 디자인이 없고 안정적인 클래식 디자인을 선보이는 분위기였다.

반대로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홈 프래그런스, 홈 오브제, Gift, Kid, Food, 웰빙 관에는 방문객 수가 조금 많았다. 아마도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리테일 바이어들이 부담 없이 구매하여 쉽게 재판매할 수 있는 값싼 유행 소품 아이템을 선호해서가 아닌가 싶다.참가 브랜드 수와 방문객 수의 감소는 또한 프랑스 공예 협회와 메종 오브제 공동 기획사인 알렉스 프랑스가 FIAC(전 Art Basel Paris) 계약을 2년 전 스위스 MCH에 뺏겨 재정상 엄청난 타격을 받아 이번 페어 기획에 영향이 미친 것이 아닌지 의문해 본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 현상은 이번 메종&오브제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리빙 페어 '메종&amp;오브제' 전경 / 사진. ⓒAETHION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