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아봤자 백수…중국 청년도 운다

란웨이와
중국 충칭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많은 인파가 몰린 모습. 한경DB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했는데 일당은 60위안(약 1만1300원)밖에 못 받았어요.”

중국 후베이성에 사는 아만다 천은 첫 직장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의약대학을 졸업한 그는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130번 넘게 지원서를 내도 원하는 일을 얻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한 국영기업에 영업직으로 입사했으나 열악한 처우에 실망했고, 커리어 패스를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中 청년 실업률 20% 육박…“이러려고 공부했나”

중국에서 고학력 백수 또는 저임금 노동자를 뜻하는 신종 노동계층인 란웨이와(爛尾娃)가 등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자금난으로 건설이 중단된 아파트를 지칭하는 란웨이러우(爛尾樓)에서 따온 말이다. 란웨이와를 직역하면 ‘썩은 꼬리를 가진 아이’다. 좋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결과적으로 끝이 좋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란웨이와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직업이든 찾기도 하지만, 일부는 범죄에 빠져들기도 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해마다 1000만 명 넘는 대졸자가 쏟아지는 중국은 청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16∼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자 통계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내부 동요를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6개월 뒤 재학생은 빼고 집계하는 새로운 청년 실업률을 공표하기 시작했는데, 수치가 14.9%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기준을 바꿔 집계한 청년 실업률조차 다시 뛰어 올 7월 연중 최고치인 17.1%를 기록했다.

윈저우 미국 미시간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더 좋은 일자리, 더 밝은 인생, 사회적 지위 상승 등 대학 학위가 약속했던 모든 것은 중국에서 점점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거듭 강조했지만 전망은 암울하다. 대학생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태가 203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일까. 현지 소셜미디어에서는 잠옷 여러 겹 껴입고 출근하기, 단체로 바닥에 드러눕기, 새를 흉내내며 셀카 찍기 같은 ‘괴상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이 느낀 좌절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시진핑 체제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온 중국 청년들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 IT·부동산 산업 위축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의 청년 실업이 심각해진 배경에는 고용의 미스매치(mismatch, 불일치) 문제가 깔려 있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기보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과 부동산의 경우 고학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이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몇 년간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업이 위축됐다. 신입 사원을 뽑기는커녕 기존 직원을 잘라낼 판이다. 반면 지방 제조업, 저숙련·저임금 서비스업 등 블루칼라 직군은 사상 최대의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설정했으나 달성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