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 박수' 테러를 자주 당하는 교향곡들을 꼽아보자

[arte] 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

곡이 끝난 후 침묵 속에서 '박수'
최고의 찬사인가, 모욕인가
“이 곡은 성체축일에 연주되어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중략) 마침 1악장 알레그로 중간에 분명 관객들이 반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경과구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청중은 모두 흠뻑 빠졌고, 엄청난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습니다.

(중략) 이 지역에서 마지막 악장인 알레그로는 언제나 1악장과 마찬가지로 모든 악기를 동시에, 게다가 유니슨으로 시작한다고 알고 있어서, 저는 2부 바이올린만의 연주를 피아노(여리게)로 8소절 진행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포르테(세게)를 이어갔지요. 그러자 청중들은 (제가 기대했던 대로) 피아노일 때는 숨을 죽였다가, 이어서 바로 포르테가 시작되자마자 박수갈채를 터뜨렸습니다.”
오카다 아케오, 음악을 듣는 법, 끌레마, 2023. p.14

너무 기쁜 나머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귀가했다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는 이 글은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그의 교향곡 제 31번이 초연되던 당시 (1778년)에는 악장 간 박수가 금기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작곡가는 박수갈채를 적극적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관객과의 소통으로 여기고 있었다. 246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서 관객이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행위는 금기로 인식되고 있다. 금기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왜"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박수를 치지 않아 왔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박수를 위한 시점을 ‘곡이 끝났을 때'로 상정하는 것이다. 만약 교향곡 하나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마지막 악장까지 전체적으로 모두 들은 뒤 판단해 보겠다는 것이다. 대화 시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과 유사한 판단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악장 간에는 박수를 치지 않으니 나도 따라 치지 않는다. 유래가 어찌 되었건 간에 현재 시점에서는 이를 일종의 사회적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있었던 서울시향의 연주회에서 적어도 이 ‘악장 간 박수'에 대해 ‘금기’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구성된 프로그램에서 지휘자로 나선 리처드 이가가 관객에게 공식적으로 악장 간 박수를 허용한 것이다. 마치 관객이 BTS를 향해 박수를 보내듯 기쁨을 박수로 표현하라며, 만약 악장 간 박수 없이 침묵이 이어진다면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매우 슬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객들은 그간 느껴온 무거운 사회적 책무를 내려놓고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차르트처럼 명랑하게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로 화답했다.사실 이날로부터 딱 일주일 전에도 악장 간 박수가 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핀란드 출신 지휘자 한누 린투와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 곡의 1악장은 유난히 진짜 곡의 피날레처럼 끝나긴 한다. 게다가 팀파니의 장쾌한 스트로크까지 더해져 모차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분명 관객들이 반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끝맺음이다.
2024 서울시향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지휘자) 한누 린투,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페이스북
테츨라프의 역동성 넘치는 해석을 만나 불꽃처럼 멈추지 않고 활활 타오르던 1악장이 끝나자 적잖은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현대식 금기를 지키며 헛기침 정도나마 표현하는 관객이 대다수였기에 그 박수는 오래 지속될 동력을 상실하려던 찰나,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다리 부상으로 회전의자에 앉아 지휘하던 한누 린투가 관객석 쪽으로 몸을 살짝 돌려 마치 "괜찮으니 계속 박수 치세요"라는 듯 그 긴 팔을 휘휘 저었다. 망설임을 머금었던 박수가 한누 린투의 개입과 함께 멈칫멈칫 4~5초간 지속됐다.내친김에 악장 간 박수에 대해 주변 음악인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모두 “전혀 이상하지 않고, 매너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적도, 음악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리처드 이가의 적극적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금지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두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반대하던 박수는 역시, 곡이 끝나기도 전에 터지는 "안다 박수"였다.

악장 간 박수와는 달리 이 “안다 박수"에는 기존에도 수많은 음악인들이 공식적으로 난색을 보여 왔다. 악장 간 박수에 관대한 듯했던 한누 린투조차 같은 날 연주했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의 피날레에 관해 “곡이 끝나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고 밝혔다. 이유인즉 작곡가가 마치 작별 인사를 위해 거리를 두며 떠나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곡이 끝난 후에도 유지되는 침묵의 순간을 음악의 연장선으로 해석한 것이다.
한누 린투(Hannu Lintu)가 쇼스타코비치를 말하다 <2024 서울시향>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YouTube 캡쳐
▶▶▶ [관련 영상] 한누 린투가 쇼스타코비치를 말하다 | 2024 서울시향 | Hannu Lintu진정한 빌런 “안다 박수" 앞에서 악장 간 박수는 차라리 선녀에 가깝다는 오래된 생각을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안다 박수로 자주 테러를 당하는 대표적인 곡은 다음과 같다.

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당장 몇 개월 전에도 지휘자 만프레드 호넥과 서울시향의 절륜한 연주를 안다 ‘브라보'와 동시에 터진 박수로 망쳐버렸다. 이 곡은 심지어 모든 소리가 멈춘 뒤에도 지휘자가 한동안 손을 내리지 않는데 그 시간 동안의 고요함으로 ‘비창'을 완성하겠다는 취지이다.

② 브람스 교향곡 3번

브람스의 4개 교향곡 중 서정적이고 조용하게 끝을 맺는 유일한 곡이다. 끝날 듯 말 듯 대목이 이어지기 때문에 진짜 끝날 시점을 아는 사람들은 잘난 척을 하고 싶을 수 있겠으나, 진정 이 곡을 알고 사랑한다면 결코 안다 박수로 산통을 깨지 않을 것이다.

③ 말러 교향곡 9번55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우주가 피고 지는 곡이다. 4악장에는 ‘매우 느리고 고요하게’, ‘죽어가듯이’ 등의 지시가 적혀 있고 소멸을 의미하는 듯 처연한 첼로와 여린 현의 소리가 이어지는 와중 터지는 박수 소리는 폭력을 넘어선 모욕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음악인들이 쌓아 올린 비애의 정서에 고요한 기다림으로 동참하는 것은 관객이 연주자와 작곡가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무대 위 뮤지션과 객석의 관객이 합심해 음악을 만드는 몇 안 되는 귀한 순간이기에 더 소중하다. “안다 박수"만큼만은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은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