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콜 받느라 사고"…배달 라이더 산재 원인 두고 '논란'

한국사회법학회 추계학술대회 개최
노조 측 "운전 중 핸드폰 보게 만드는 알고리즘 문제"
배달앱 측 "AI 활용하면 산재 되레 줄어"
연구진 "알고리즘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점 입증 안돼...
기후, 신호위반이나 과속 등이 직접적 원인에 가까워"
사진=뉴스1
최근 증가하고 있는 배달라이더 산재 사고의 원인을 배달앱 '알고리즘' 탓으로만 몰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교통 법규 위반이나 도로 환경, 악천후 등 알고리즘 외의 요인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에 가까우며, 이를 제거할 수 있는 예방책 마련이 '알고리즘 탓하기' 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사회법학회(회장 이상희 한국공학대 교수)는 20일 서울 강남구 대한상사중재원에서 OECD한국NCP와 공동으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사회법학회는 노동관계법, 사회보험법 등 사회법 분야 연구단체다.2부 행사에서 총 4개 주제로 발표가 이뤄진 이번 행사에서는 2주 제2 주제가 이목을 끌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와 오상호 국립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앱 이용 이륜차 배달종사자의 산재 발생 원인 및 예방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지난 2022년 기준 퀵서비스 기사 산재 승인은 6062건이며 이 가운데 음식 배달 노동자 산재가 3879건(64%)을 차지했다. 음식 배달 노동자 산재 승인은 2019년 537건에서 2020년 1184건, 2021년 3227건, 지난해 3879건으로 증가세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음식점 배달종사자 사고의 원인이 앱의 기능중 하나인 알고리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진은 "(라이더 산재는) 배달 시간, 도로 환경, 기상 상황 등 환경적 요인과 중앙선 침범이나 불법유턴 등 교통법규 위반, 안전 운전 의무 불이행, 안전보호장구 미착용 등 교통 규범적 요인이 가장 지배적인 것으로 확인된다"며 "(노동계 등은 알고리즘과 관련된) 주행 중 콜 수신, 배송시간 등 기술적 요인과 묶음 배달, 고객 평점 등 문화적 요인 등을 산재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연구진은 배달종사자 주요 사고의 원인을 10개로 유형화해 최근 이륜차 사고의 원인을 다룬 국내 39건의 연구논문 및 정책보고서와 각종 설문조사를 근거로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초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된 ‘위험성 평가 관련 도구 개발 만 실태결과 발표’ 등에 따르면 △운전 중 앱 화면을 확인하기 위해 전방주시를 못 하는 것 △운행 중 앱 터치 조작으로 인한 위험 △폭우·폭설 등 위험 날씨 운행 프로모션 △적정하지 못한 배달운임 △알고리즘 변경 등 위험 요인에 대한 라이더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라이더 노동조합(라이더유니온) 소속 조합원은 배달 운임과 알고리즘을 높은 위험 요인 순위로 인식한 반면, 비조합원들은 중간 이하의 위험성으로 인식했다. 반면 위험 운전이나 헬멧 미착용에 대해서는 비조합원은 높은 위험으로 인식하였으나 조합원은 중간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등 전반적인 인식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다른 인식은 디지털 알고리즘이 위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감소시킨다"며 "배민 내부 기관에서 노사가 함께 참여해 시행한 라이더 위험성 평가에서도 가장 높은 위험성 요인으로 '비나 눈 등으로 인한 도로 상황 악화에 따른 미끄러짐 사고, 타 운전자의 신호위반이나 과속 등에 따른 사고', 도로 상태 불량이 지목됐고, 알고리즘과 관련된 주행 중 휴대폰 조작에 따른 사고 등은 낮은 것으로 지목됐다"고 설명했다.실제로 배민라이더 55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라이더들이 사고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응답한 가장 큰 인식 요인은 '기상 등 환경적 요인'과 '안전 운전 의무 불이행 등 교통 규범적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알고리즘은 라이더 사고의 간접적 원인일 지는 모르겠으나, (알고리즘이 직접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소모적 논쟁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배달 라이더 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기보다, 사업자의 지원 확대와 배달 종사자의 안전의식 개선 및 사회 전반의 교통안 전 환경 개선 등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주제에 대해 토론에 나선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도미노 피자의 ‘30분 배달 보증제’는 도미노 피자 배달원이 난폭 운전을 하다 한 여성을 치어 사망하게 한 다음 폐지됐다"며 "배달원들을 도로 위에서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알고리즘을 운용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 하는 사고는 배달원 개인의 실수(human error)로 치부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실제로 배달앱 등은 AI 추천 배차 등 알고리즘이 되레 라이더 사고 확률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지난 7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AI 추천배차를 사용하는 라이더 그룹의 사고 확률은 이를 사용하지 않는 라이더 그룹에 비해 27.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라이더 유니온 관계자는 "도로 상태나 기후 환경은 사람이 통제할 순 없다"며 "기업이 직접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사고의 변수가 될 수 있어 통제를 해야 하는 게 자명하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행사 1부에서는 'EU 기업지속가능실사법과 OECD 다국적기업 기업책임경영 가이드라인 간 정합성 연구'를 주제로 이수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 교수는 '개정 OECD 다국적기업 기업책임경영 가이드라인의 내용 및 NCP의 운영상의 고려사항'을 주제로 박수경 강원대 비교법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이에 대해 각각 김도환 고려대 법학연구원 노동사회보장법센터 박사와 조인호 대한상사중재원 분쟁종합지원센터 차장이 토론에 나섰다.

2부 행사에서는 권혁 교수가 '노동법 체계의 ‘제도실패’와 노동 약자의 보호'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고 차동욱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토론에 나섰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