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도 "하이힐 자제"…아이유 잔디 위 콘서트가 무슨 죄 [연계소문]

[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어려운 스포츠-대중문화 상생
잔디 이슈로 '상암 입성' 영광에도 진땀
서울 대형 공연장 부재에 대관 전쟁 지속
경기·인천 개최 늘어·쪼개기 공연도
가수 아이유 /사진=변성현 기자
"아이유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요?"

가수 아이유의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콘서트를 앞두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서울시가 잔디 보호를 이유로 내년부터 문화행사 대관에 '그라운드석 판매 제외' 조건을 내건다고 밝히면서 마치 경기장의 잔디 손상이 아이유 탓으로 보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서울 내 대형 공연장의 부재가 지속되면서 K팝과 스포츠 팬들 모두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잠실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스타디움급 공연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유일한 상황.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스포츠계와 대중문화계의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잔디 문제로 불거진 '아이유 사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현 세태를 대변했다.

업계에서는 "아티스트가 죄인이 되는 분위기"라는 한탄이 나온다. 절차대로 대관을 진행하고, 무대 셋업부터 철수까지 매 단계 그라운드 보호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데도 '잔디 파괴범' 눈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잔디 보호 매뉴얼을 따르며 최대한 협조하고 있음에도 대관 주체가 절대 우위(甲)인 분위기 속에서 작업이 쉽지 않다고 한다. 반면 경기장 입장에서는 문화행사가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촘촘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공연 주최 측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대안을 추가로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가수 임영웅은 그라운드 좌석을 아예 없앴고, 경기장을 에워싸는 형식의 돌출무대를 마련했다. 비워둔 그라운드를 대규모 인원의 댄서들로 채웠고, 그라운드 바깥쪽 무대를 아티스트가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등 동선이 비효율적이었지만 불편함을 감수한 선택이었다.
가수 아이유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유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 좌석배치도
아이유 콘서트 예매자가 하이힐 자제를 부탁하는 내용의 안내 문자를 받았다. /사진=독자 제보
아이유 역시 메인 스테이지와 돌출 무대를 잇는 브릿지 없이 스테이지를 두 개로 나눴다. 다만 그라운드에 좌석을 깔았다.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사전에 안내받은 그라운드 사용 매뉴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준수함은 물론, 전 스태프를 대상으로 숙지하고 지켜야 할 주의사항과 행동 강령 등에 대한 사전 교육도 실시한다"고 밝혔다.또 당일 좌석 배치 및 일요일 공연 종료 후 곧바로 철수를 진행한다. 이때 통풍이 잘되고 물을 줄 수 있게 구멍이 뚫린 잔디 보호대를 설치하기도 한다. 예매자들에게도 협조 안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플로어 관객의 경우,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잔디 보호를 위하여 잔디 보호재 사이로 꽂힐 가능성이 있는 신발(하이힐, 굽 있는 신발 등)의 착용을 삼가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21, 22일 양일 공연을 모두 예매했다는 30대 김모 씨는 "스탠딩이 아니라서 방방 뛰는 콘서트가 아닌데도 신발과 관련한 안내가 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20대 이모 씨도 "가수가 욕먹는 건 의아한 부분"이라면서 "관심이 쏠리는 만큼 누구보다도 잔디 보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생각을 밝혔다.

한 공연 관계자는 "경기장의 주 용도가 있으니 전 스태프가 무조건 협조하는 분위기"라면서도 "정당하게 대관을 했는데도 눈치를 보면서 작업해야 하는 등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은 편이다. 이건 상암뿐만 아니라 고척스카이돔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야외 스타디움 특성상 소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세븐틴 콘서트 당시 평일 밤 10시까지 리허설이 진행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바다. 이에 임영웅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컨디션이 비슷한 다른 장소에서 리허설을 진행했고, 해당 지역에서 소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이웃 주민들에게 참외를 돌리기도 했다. 아이유는 경기장 일대 주민들에게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선물하며 양해를 구했다.
가수 임영웅 콘서트 /사진=물고기뮤직 제공
업계는 근본적으로 공연장 부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설상가상으로 최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주경기장은 리모델링이 완료되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잠실야구장 대체 공간으로 사용돼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 야구 경기장인 고척돔 등도 경기 비시즌에만 소수 대관이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 인천 등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세븐틴은 오는 10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공연한다.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도 내년 4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총 4회에 걸쳐 내한 공연을 진행한다.

콜드플레이 콘서트 예매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힌 한 팬은 "총 4회 공연 중 3회가 평일인 데다가 장소가 고양이라 이동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연차를 써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서울 인구가 몇 명인데 대형 공연 하나 할 곳 없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3만석 이상 공연장이 5곳, 1만석 이상 공연장이 40여곳 이상이다. 도쿄권만 따져도 1만석 이상 아레나급 공연장이 14곳,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급 공연장은 4곳이다. 반면 한국은 스포츠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사실상 KSPO DOME(올림픽 체조경기장) 하나다. 스타디움 체격의 아티스트까지 KSPO DOME에서 4~6회씩 쪼개기 공연을 하면서 그야말로 '대관 전쟁'이 빚어지고 있다.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은 "대형 공연장 부족 문제는 해외 아티스트의 글로벌 투어에서 한국만 빠지는 '코리아 패싱'과 K팝 아이돌의 한국 무대 활동이 축소되면서 결국 이는 막대한 경제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짚었다.대관 전쟁은 티켓 가격 상승, 암표 폭증 등의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중음악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서울, 수도권 임시 공연장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정부, 서울시, 체육계, 문화계 등 통합협의체(TF) 구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