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카즈 감독처럼 저도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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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통조림 뚜껑을 접는 마음
한 주에도 몇 번씩, 각종 요리와 반찬을 위해 참치, 꽁치, 햄, 옥수수 등이 담긴 통조림을 뜯으면 특유의 원통형 용기를 밀봉하기 위해 비슷한 소재로 마감한 금속 뚜껑을 열어야만 합니다.그런데 이 과정에서 금속 소재 특유의 예리한 뚜껑은 손을 베일 만큼 얇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생깁니다. ‘쓰레기통에 대충 버렸다가 이를 무심코 집는 다음 사람이 다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그 작은 우려는 어머니의 분리수거를 어깨너머로 볼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재활용되기 이전까지 분리되어 수거된 각종 물건을 만지다가 다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바람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통조림 뚜껑을 휴지로 둘둘 말아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사진. ©김현호](https://img.hankyung.com/photo/202409/01.38060629.1.jpg)
![차량과 보행자 모두 조심하게 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 / 사진. ©김현호](https://img.hankyung.com/photo/202409/01.38060794.1.jpg)
특히 우리가 ‘비닐봉지’라고 부르는 LDPE(저밀도 폴리에틸린)나 OTHER(아더, 기타 복합 플라스틱)로 분류되는 것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하니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만 합니다. 저보다 분리배출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은 아내가 어느 날 저녁 한마디 합니다.
“비닐과 아더는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도 재활용이 안 돼. 그냥 일반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물이라도 아끼지” 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김칫국물이나 양념이 잔뜩 묻은 비닐은 굳이 빨지 않고 있습니다. 물을 아끼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게 됐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아빠, 다른 집들은 다 대충 버리는데 우리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환경부 공무원들이 분리배출을 교육하기 위해 제작한 영상 속 아빠처럼 대답합니다. “우리라도 해야지”
무엇이든 배달해 먹게 된 시대에는 오히려 배달 음식을 먹지 않지만, 특별한 날에는 아이들을 위해 중화요리(거창해 보이지만 짜장면, 짬뽕을 말합니다)를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예전부터 각종 요리를 담아낸 그 접시를 깨끗하게 설거지해서 수거 봉투에 넣는 일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음식이 배달될 때 수거 봉투가 동봉되는데, 음식물 없이 깨끗하게 세척된 접시를 넣어 놓으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는 아주 잠시라도 기쁜 마음이 생길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아주 오래된 습관입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짜장면과 군만두를 즐겼던 학창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배웠던 것인데요.
아마도 저와 형도 그때 똑같이 물어봤을 겁니다. “엄마, 왜 우리 집만 이렇게 해요?”라고 말이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접시를 돌려받는 사람이 기분 좋으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책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와 수많은 영화를 통해 밝혔듯 타인을 향한 작지만 따뜻한 시선을 품은 예술가입니다. 가장 최근 영화인 <괴물>(2023)에도 작지만 놀라운 힘이 묘사됩니다.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인물 호리 선생님을 향해, 여자친구를 비롯해 주변의 동료들은 늘 그 미숙함을 꾸짖습니다. 특히 오탈자(誤脫字) 찾는 취미를 갖는 이 인물을 한심한 듯 바라보죠. 그런데 보잘것없는 일로 묘사되던 선생님의 취미는 두 주인공 ‘무기노 미나토’와 ‘호시카와 요리’만의 비밀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타인의 기준에서 볼 때 호리 선생님과 두 아이는 평범하지 않기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서로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Aqua)’가 흐를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우리에게 이렇게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습니다. “보세요. 헛되지 않았어요”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