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엄마, 그 영원한 힘

임수미 테일트리 대표
작년 10월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2010년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아주 심한 우울증을 겪다 결국은 치매로 10년 이상 고생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항상 ‘오늘 저녁 메뉴는 무엇일까’ 기대하며 서둘러 집에 왔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내가 먹어본 요리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는 분이셨다. 깨끗이 청소된 집에 와서 엄마가 해 주시는 맛난 저녁을 먹으며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뜨끈한 도시락을 수건에 싸서 학교로 가져다주셨다. 교실까지 와서 뒷문을 살짝 열고 손짓하면 나가서 밥을 받아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우리 엄마는 유머가 많고 사교적이지만 가끔 분노 조절을 못 하고 엄청나게 화를 내기도 했다. 정이 많아 남을 잘 돕다가도 의심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칭찬에는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 나는 진심 어린 칭찬을 먹고 자랐다. “우리 수미는 어쩌면 저렇게 아는 게 많아,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참 착하기도 하지, 엄마는 수미가 제일 예뻐.” 학교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대학 공부를 위해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 나 혼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반대하지 않았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 동네에서 미국에 갔다는 사람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놀랍고 걱정되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미국행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나는 30년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은 한국에서 보냈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엄마 근처에 있고 싶었다. 엄마의 얼굴은 너무나 일그러져 있었고 숨쉬기도 어려워 보였다. 다음 날 새벽 엄마는 우리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셨다. 우리 4남매가 도착했을 때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 4시간 정도 지난 후였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게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병실에 들어가 누워 계신 엄마를 보고 나는 안도했다. 돌아가신 엄마는 즐겨 입던 노란색 셔츠를 입고 평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빛이 나 보였다. 우리 넷은 엄마를 부둥켜안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연신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더 많이 찾아보지 못하고 엄마에게서 먼 곳에서 살아서 미안해야 하는데, 난 어쩐지 그 말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엄마에게 효도했으니 우리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엄마는 돌아가시면서도 우리가 걱정하지 않게, 젊었을 때 한 인물 하던 그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