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이상 좇는 '효율적 이타주의'…'나만 옳다' 사로잡혀

실리콘밸리에 퍼진 사상
월드코인이 촉발한 논란의 배경은 실리콘밸리의 ‘효율적 이타주의’ 사상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선한 행동을 하더라도 감정에 따르는 것보다 냉정한 이성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더 큰 선(善)을 위한 수단은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어 월드코인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될 전망이다.

실리콘밸리 경영자들과 개발자들은 2015년 윤리학자 피터 싱이 처음 주창한 효율적 이타주의에 매료됐다. 현재가 아닌 미래 신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은 논리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삶의 방식에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일리야 수츠케버 수석 과학자 등 대표적인 효율적 이타주의 신봉자들로 구성된 이사진으로부터 축출당했다. 이들은 당장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AI의 위협으로부터 미래 수십억명의 잠재적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AI 상용화를 추진하는 올트먼을 쫓아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AI 스타트업 ‘코히어’ 창업자 에이단 고메즈 CEO는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극단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올트먼 CEO는 월드코인에서는 극단적인 효율적 이타주의 성향을 보인다. “국가나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세계 경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도 생체 데이터를 대가로 자산을 지급하는 걸 금지한 미국에서는 월드코인을 출시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인류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이라는 선을 내세우지만 관련 규제가 모호한 국가에서만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