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동결한 일본은행…단계적 인상 시사했지만 "당장은 아냐"

日 기준금리 '매파적 동결'

7월 인상 후 금융시장 요동치자
9월 만장일치로 年0.25% 동결
엔화값 잠잠, 닛케이 소폭 상승

우에다 총재 "시간 여유 있다"
임금·물가 등 인상 요건 다 갖춰
엔캐리 청산·총리 선거 등 '변수'
일본은행이 20일 연 0.2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경제·물가가 전망대로 움직이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인상해 금융완화 정도를 조절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간적 여유는 있다. 당장은 아니다”고 발언했다. 시장 영향을 의식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고심 깊은 우에다 >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 일본은행 본부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은행은 전날부터 이틀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연 0.2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불안정한 시장에 금리 동결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정책위원 9명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를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시장 예상과 일치했다. 현상 유지 배경은 불안정한 시장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성명서에서 “금융·외환시장 동향과 경제·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에다 총재는 “일부 약한 움직임도 있지만 경기는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일 일본 도쿄의 한 증시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일본은행은 경제와 물가가 전망대로 움직이면 앞으로도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방침을 밝혔왔다. 우에다 총재도 이날 회견 초반 “전망이 실현되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인상, 금융완화 정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정책 판단에 시간적 여유는 있다”며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시장에선 이르면 12월 추가 금리 인상을 점쳤는데,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날 오전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42엔대에서 움직이던 엔·달러 환율은 낮 12시 금리 동결 직후 141엔대로 소폭 떨어졌지만, 우에다 총재 기자회견 중 오히려 143엔대까지 올랐다.

우에다 총재가 매파적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7월 금리 인상 이후 시장이 요동친 데 대해 강하게 비판받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행은 지난 7월 말 기준금리를 연 0~0.1%에서 연 0.25%로 올렸다. 8월 초 미국 경기 둔화 우려까지 확산하면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5엔 안팎까지 급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엔·달러 환율은 7월 초만 해도 달러당 160엔을 넘나들었다.

급격한 엔고는 일본 증시는 물론 글로벌 자산 시장까지 흔들었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린 뒤 고금리 통화로 운용해 차익을 얻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광범위하게 청산된 영향이다. 8월 초 닛케이지수는 1987년 미국 ‘블랙 먼데이’ 때를 넘어 가장 크게 떨어지며 31,000대까지 주저앉았다.

○일본의 역피벗…“전례 없는 도전”

당장 시장의 동요는 막았지만, 일본은행이 결국 금리 인상 카드를 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 미국의 금리 인하 국면에서는 엔고에 따라 일본 주가의 하락 압력이 커졌다. 일본은 금리를 올릴 유인이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는 게 일본은행의 판단이다. 일본은행은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고 연착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엔 매수 압력은 제한적이어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 국내 경제도 과거와 다른 상황이다. 7월 근로자 1인당 평균 명목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3%대 증가했다. 증가세는 31개월째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2.8% 올랐다. 4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임금과 물가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선순환이 더 뚜렷해지면 추가 금리 인상 요건이 조성된다는 게 일본은행의 판단이다. 추가 금리 인상 시기는 이르면 올해 12월, 늦어도 내년 1월이라는 관측이 많다.변수는 미국 경제다. 미국 경제 침체 리스크가 커지면 다시 엔고 압력이 강해진다. 이 경우 일본은행이 쉽게 금리 인상에 나서기 힘들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대혼란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우에다 총재는 “미국 경제의 움직임이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상황도 변수다.

시장에선 오는 27일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따라 출범하는 새 정권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주목하고 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