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대 로마 판테온

미국 라스베이거스 ‘매디슨스퀘어가든 스피어’의 내부
지난해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로운 공연장 ‘매디슨스퀘어가든(MSG) 스피어(구체)’가 개관했다. 제임스 돌런 MSG스포츠·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새롭고 혁신적이며, 몰입하는 경험을 줄 최첨단의 공연장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지 5년 만이었다. 오픈 기념 공연으로 세계적인 팝가수 그룹 U2가 공연을 했지만 정작 관객들은 공연보다 새 공연장의 환상적인 장면 연출에 더 놀라워했다.
로마 신전 판테온의 내부
나를 감싸는 거대 원형 공간MSG 스피어는 높이 113m, 폭 150m, 둘레 210m의 세계 최대 구형 구조물이다. LED 전구 120만 개로 뒤덮여 건물 전체가 입체적인 하나의 광고판 역할을 한다. 거대한 구형이기에 크기에서 오는 광고 효과도 있지만 지구나 우주, 농구공 같은 둥그런 모양은 평면에 비추는 것보다 훨씬 강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내부 공간은 하늘을 덮는 원형으로 아이맥스 20배, 축구장 3개 면적의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을 갖춰 2만3000명(입석 5000명 포함)의 관중을 일거에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개별 좌석에 삽입된 16만4000개 스피커는 소리를 입체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햅틱 좌석은 공연 분위기에 맞춰 관객이 최대한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건물의 설계는 잠실종합운동장 복합재개발 설계에 참여하고 있고, 공연장과 경기장 등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미국 파퓰러스가 맡았다. MSG 스피어가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데는 숨겨진 비밀들이 있다. 1만5000㎡에 이르는 고해상도 영상 제작을 위해 처음에는 아이맥스처럼 번들로 묶인 카메라로 영상을 찍은 후 편집해 사용하려 했으나, 열 대가 넘는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이 어려워 빅스카이라는 30㎝ 크기의 어안렌즈를 개발해 촬영했다. 사람이 화면을 최대한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각인 위아래 60도, 좌우 90도를 훌쩍 넘어 우리가 마치 영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착각할 충분한 크기와 16K의 고품질 영상을 만들어낸 것이다.개별 조정되는 스피커는 실감나는 청감각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오토바이를 탈 때 부릉부릉 엔진음의 리듬이 심장박동과 공명을 같이하며 소음을 통해 편안하면서도 박진감 있는 리듬감을 느끼도록 디자인된 것처럼, 시각 다음으로 사람의 감각을 일깨우며 감정을 변화시키는 음향이 최대치로 활용됐다.

인간은 돔의 공간에 들어가면 자신을 폭 감싸주는 감정이 들고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원형의 지붕 천장은 우주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구체의 건물은 짓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며, 끝도 시작도 없이 하늘로 이어지는 원형은 평등과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판테온’이 시작한 돔 건축돔 건축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로마의 판테온은 집정관인 아그리파가 세운 건물로, 세상의 모든 신을 모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기원후(AD) 125년께 새로 지어진 것이다. 지름 43m, 아파트 15층 높이의 거대한 원형 돔의 내부 공간은 텅 비어 있고, 천장에는 동일한 사각형 박스가 줄줄이 배열돼 끝없이 반복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무한반복의 우주공간 같은 돔 내부에 들어서면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늘 아래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베드로성당, 성소피아사원 등 많은 종교시설이 몰입도가 높은 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실내 경기장이나 공연장들이 원형의 공간, 돔 천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수용하는 데 원형이 유리하다는 기능적 이유도 있겠지만, 원형의 공간이 사람들을 유혹하기 좋은 형태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판테온이나 원형 돔의 건물들이 신앙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활용됐던 것처럼, MSG 스피어는 원형의 공간 속에서 커다란 화면과 선명한 음향으로 사람과 공간이 일체화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판테온이 정지된 하늘을 표현하며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이끌었다면, MSG 스피어는 하늘을 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현대인의 흔들리는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