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자들> 60년 만에 정식 개봉, 여전히 선명한 혁신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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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서방의 영화 언론들은 종종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를 소개하며 그의 이름 철자를 빌려 ‘영화의 신(God of Cinema)’이라고 표현한다. 저항과 혁신을 영화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숭배를 경계했던 고다르라면 ‘빌어먹을 헛소리를(Bull shit)!’ 반발했을 테지만, 그의 작품이 영화사에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기는 힘들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로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파도, 즉 ‘누벨바그(Nuvelle Vague)’를 이끈 장 뤽 고다르의 또 다른 대표작 <국외자들>(1964)이 개봉 6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 처음 정식 개봉했다 (9월 25일). 고다르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국외자들>은 미국 영화, 특히 범죄물에서 받은 영향력, 문화 전방위를 아우르는 감독의 지적인 면모가 반영된 대사,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물들의 운동성 등이 제멋대로인 듯 혼재되어 있다.겉보기엔 무질서해 보여도 고다르는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며 전에 없던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었다. <국외자들>은 절친한 아르튀르(클로드 브라소)와 프란스(사미 프레이)가 오딜(안나 카리나)을 부추겨 그녀의 이모 집에 있는 거액을 훔치려고 계획을 짜지만, 실패로 귀결하는 흐름을 따라간다. <네 멋대로 해라> 또한 차를 훔치고 경찰을 죽이고 미국인 여자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다 사살당하는 남자(장 폴 벨몽도)의 이야기였다.
단순하게는 실패한 범죄자의 사연이어도 범죄물의 전형을 넘어 특별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이들 영화의 비극적 미학의 핵심이 세상을 향한 고다르의 발언이라서다. 고다르는 기존의 프랑스 영화들이 문학이나 각색하며 진짜 프랑스 사회를 카메라에서 감추려 한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고다르의 작품은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행인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등의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내는 방식은 ‘혼란’을 의도적으로 전면화한다.
아르튀르와 프란스와 오딜이 인연을 맺는 곳은 영어 학원이다. 선생이 수업을 하거나 말거나 이들 셋은 쪽지를 보란 듯이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아르튀르와 프란스는 오딜의 이모 집을 시찰하겠다며 차를 몰고 가서는 보도의 연석 위에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돈을 훔치러 간 디데이에는 정교한 계획 따위를 수반하지 않아 우왕좌왕하다가 의도하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또 스스로가 죽는 지경에 이른다. 삶을 주도한다기보다 순간의 욕망에 끌려간다는 자포자기의 인상이 강한 것이다.돈을 훔친다는 의지 하나를 제거하면 이들의 모든 행위에는 인과의 논리가 결여되어 있다. 어느 미국인이 9분 45초 만에 루브르 박물관을 돌았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보다 빨리 달리자며 경비원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람객 사이를 질주하고, 커피를 마시러 간 카페에서는 뜬금없이 미국의 뮤지컬 영화를 따라 하는 듯 합을 맞춰 춤을 추는 식이다. 언급한 두 개의 예는 <국외자들>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앞일은 생각하지 않고 순간에 충실한 당대 프랑스 청춘의 심리가 극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모 집에 눌러살고 있는 오딘이나 돈을 구해오라는 아빠와 삼촌의 압박에 시달리는 아르튀르나 진창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어도 그 때문에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가, 안색이 어둡거나 세상을 일부러 멀리하거나 하지 않는다. 차가 있으니까 신나게 몰고 맘에 드는 이성이 있으니까 사랑을 갈구하고 돈을 숨겨놨다니까 훔치려 하고, 앞뒤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드러내니, 고다르의 영화에서 아르튀르와 프란스와 오딜 같은 이들이 쿨해 보이는 거다.<네 멋대로 해라>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선망했던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 죽어가면서도 고통에 겨워하는 대신 무표정과 시크한 독백으로 일관했던 ‘폼’이었다면 <국외자들>의 아르튀르와 프란스와 오딜에게는 ‘영화 같은 순간의 재현’이다. 아르튀르가 돈을 훔치는 데 실패하고 삼촌과 서부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맞대결에서 총에 맞고 사망하자 프란스와 오딜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보니(페이 더너웨이)와 클라이드(워렌 비티)라도 되는 양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차를 몰고 달릴 뿐이다. 고다르도 영화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 따위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선배 감독들에 일침을 날리면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말하자면 기존 프랑스 영화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혁신을 일궜고 혼란한 청춘을 정체성 삼아 프랑스 사회를, 세계 영화사를 흔들었다. <국외자들>에서 아르튀르는 T.S. 엘리엇의 시를 인용해 ‘모든 새로운 것은 세월과 함께 자동으로 고전이 된다’고 말한다. <국외자들>은 영화 역사가 증명하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지만, 지금 보아도 새롭다는 느낌이 전혀 탈색되어 있지 않다.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