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사상 가장 달콤한 노래, 라 보엠 '오 사랑스런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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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오, 사랑스런 아가씨. 달빛이 그대의 어여쁜 얼굴을 비추네요. 내 영혼은 극도의 달콤함으로 전율하고 있답니다(로돌포).”
‘오 사랑스런 아가씨’ -푸치니 오페라 中에서
“오직 당신만이 제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요. 그것은 사랑! 당신이 해주는 찬사야말로 내 마음을 적셔요(미미).”
“카페 모무스(Momus)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가야 해요(로돌포)”
“하고픈 말이 있는데요. 저도 따라가고 싶어요(미미)”
“밖은 아주 추운데요(로돌포)”
“당신 곁에 있으면 되죠(미미)”
“우리 팔짱을 낄까요, 작은 여신님?(로돌포)”
“그럴게요(미미)”
“날 사랑한다고 말해줄래요?(로돌포)”
“사랑해요(미미)”
“사랑! 사랑! 사랑!”(로돌포⸱미미)“오페라의 재미 중 하나는 주인공 이름 외우기다. 어떤 작품은 주역들 이름을 좀체 떠올리기가 쉽지 않지만, 푸치니 <라 보엠>은 다르다. 로돌포(Rodolfo)와 미미(Mimi), 착 달라붙는다. 책⸱평론⸱자료 속에서 어쩌다 ‘루돌프(Rudolf/Rudolph)’라는 영독식(英獨式) 이름으로 남자 주인공을 붙인 걸 보면 속상하다. 이탈리아인에 대한 무례이며 자신의 언어적 둔감에 대한 노출이라 하겠다.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파리. 가난한 시인 로돌포는 춥고 옹색한 다락방에서 곧 외출할 참이다. 그때 가냘픈 이웃집 여인 미미가 들어온다. 촛불이 꺼져서 성냥을 얻으러 왔던 것. 그러나 돌아가다 열쇠를 떨어뜨리고, 창문 사이로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방은 어둠에 휩싸인다. 열쇠를 찾다가 로돌포 손이 미미에 닿아 부르는 아리아가 저 유명한 ‘그대의 찬 손’이고, 미미가 부르는 화답송이 ‘내 이름은 미미’다.
내처 둘은 사랑의 감정에 불을 지펴 이중창을 부르게 되는데 이게 바로 ‘오 사랑스런 아가씨/O Soave Fanciulla’. 오페라 역사 속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주고받는 가장 달콤한 밀어(蜜語)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이 노래 하면 유시 비욜링(Jussi Björling, 1911~1960)을 빼놓을 수 없다. 클래식의 변방 스웨덴 출신의 걸출한 테너. 27세 때 꿈에 그리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데뷔 무대가 <라 보엠>이었고, 여기서 바로 이 아리아를 부르며 궁극의 하이C를 멋들어지게 불러 젖혔다. 혹자는 역대 테너 중 울림이 가장 아름다운 명인(名人)이었다고 평한다. 음악성과 테크닉, 무엇보다 유연하게 나오는 고음(高音)이 비욜링의 트레이드 마크다."놀라운 품질의 목소리. 딱 듣기 좋은 볼륨의 '은빛 울림'. 뜀틀의 발 구름판에서 막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의 음성." 독일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 위르겐 케스팅의 평가다. 파바로티가 범접할 수 없는 금빛의 위용이라면, 비욜링은 부담이 덜한 은빛의 아우라를 지녔다. 그렇다고 힘이나 기교가 떨어지는 게 아니다. 외려 그에게는 파바로티에게 부족한 모종의 애틋한 감상(感傷)과 은은한 애조(哀調)라는 매력이 있다.
타고난 미성에 정직한 발성, 울림이 빛나고 단단한 고음을 장착한 비욜링.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우선 연기력. 이는 멋쩍어하고 소극적 성격인 탓이다. 다음은 작은 키. 여주인공이 큰 경우 그림이 안 이뻤다. 마지막이 술고래였던 점. 그래서였을까, 4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미미 역은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1922~2004,伊) 버전으로 골랐다.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 출신. 맑고 우아하고 기품 있는 리릭 소프라노의 전형으로 불린다. 테발디는 리릭이긴 해도 탁 트이고 울림이 크면서도 옹골찬 느낌을 준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마리아 칼라스에게 만약 라이벌을 단 한 명 붙인다면 테발디일 거라는 게 중론이다. 나이가 한 살 위에다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라는 자부심을 탑재했기에 이방인 칼라스와 오래도록 불화했다.
영상 클립은 1956년, 미국 TV쇼에 출연한 45세 비욜링과 34세 테발디가 듀오로 일합한 기념비적인 연주다.
[비욜링 & 테발디, '오 사랑스런 아가씨(O soave fanciulla)']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