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의·정 중재 빌미로 정치적 잇속 챙기는 일 없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민주당은 의료 공백 타개를 위해 의협과 계속 긴밀히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영리화에 대한 인식도 같이했다고 했다.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개혁이 정부의 의료 영리화를 위한 노림수라는 의협의 주장에 민주당이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이 대표 역시 간담회 후 “의협 쪽에서는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 정부가 좀 개방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집을 부려 일이 안 풀린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의협의 주장은 변함없이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이다. 2027년 정원부터나 논의가 가능하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8개월째 이어져 온 의·정 갈등에서 오히려 계속 물러서고 양보해 온 건 정부다. 의협이 진짜 문제 해결 의지가 있었다면 진즉에 정부와의 대화 자리에 앉았어야 한다. 지금은 거대 야당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역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달 초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의료계의 거부로 난관을 겪자 주도권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에선 민주당 측이 정부를 뺀 ‘여·야·의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구상도 제시했다. 당정 간 틈새를 넓히겠다는 의도를 넘어 ‘정부 패싱’의 어이없는 발상이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이 열린다. 한 대표는 만찬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한 대표는 의료계를 협의체에 끌어들이기 위해 내년 증원도 의제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대가 성사됐다면 이 문제를 주로 거론할 예정이었다. 이미 내년 대학입시 절차가 시작된 마당에 대혼란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정치권이 중재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칫 포퓰리즘에 빠져 정부만 압박하다가 배가 산으로 갈까 우려된다. 혹시라도 의료 개혁이 좌절되면 단순히 원점 회귀가 아니라 회복하기 어려운 퇴보가 불가피하다. 정치권이 진정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면 돌아앉은 의료계를 설득하는 일부터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