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들어오면…"퇴직연금 수익 높아져" vs "민간 금융 초토화"

국민연금, 퇴직연금 시장 참여 놓고 찬반 '팽팽'

與野, 퇴직연금 개혁 한목소리
"전문적인 별도 운용 조직 시급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흡수하면
경쟁체제 조성돼 금융시장 성장"

20년간 전담하던 금융계 반발
"국민연금 시장개입으로 대혼란
몸집 1500조로 커져 기업 압박"
정권 입맛 따라 운용될 우려도
퇴직연금은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3층 보장 체계 중 하나다. 1층은 국민연금·직역연금 등 공적연금, 2층은 퇴직연금(기업연금), 3층은 개인연금으로 이뤄져 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사적연금으로 분류된다. 정치권은 국민연금을 개혁하면서 퇴직연금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가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퇴직연금은 회사 또는 근로자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민간 금융사와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가입자가 투자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적립금의 90%가량이 원금 보장 상품에 집중돼 수익률이 낮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정치권 “덩치 키워야 수익률 높아져”

거론되는 개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퇴직연금 적립금을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이 관리하면서 집합적으로 투자하는 ‘기금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야 자산 배분 효과와 복리 효과를 극대화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기금화한 퇴직연금을 수탁 운용하는 사업자에 민간 금융사 외에 국민연금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적립액이 1000조원을 넘어선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전문가들이 퇴직연금을 굴리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엔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사업자로 끌어들이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까지 진출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더 비대해지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치권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이는 방안에 긍정적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0인 초과 사업장은 국민연금을 통해, 100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퇴직연금을 기금화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는 ‘30인 이하’ 중소기업만 근로복지공단이 운용하는 기금형 ‘중소기업퇴직연금제도(푸른씨앗)’가 적용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아직 공식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노동계 등에서도 꾸준히 주장해온 방안인 만큼 찬성 기류가 강하다.여당에선 당내 연금개혁의 ‘키맨’ 역할을 맡은 박수영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안상훈 의원 등이 찬성하고 있어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박 위원장은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결국 덩치를 키워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적립금까지 흡수한다면 국민연금도 좋아지고 퇴직연금 가입자도 좋아지는 윈윈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이라는 메기가 들어와 경쟁 체제가 조성되면 우리 금융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500조 국민연금, 주식시장 좌지우지”

금융업계는 공적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사적 연금인 퇴직연금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지난 20년간 400조원 시장으로 일궈온 금융업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란 게 첫 번째 이유다. 공공이 민간을 구축하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주장이다. 금융투자협회·전국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 등은 최근 한 의원을 찾아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 과도해지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까지 장악하면 운용 규모가 1500조원에 이르게 된다”며 “사실상 국내 주식시장이 국민연금에 의해 좌지우지돼 시장의 비효율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도 문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쌈짓돈으로 활용해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등 연금 사회주의의 부작용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유혹에 퇴직연금까지 노출시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설지연/곽용희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