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비판한 미 문화이론가…프레드릭 제임슨 별세

'근대(자본주의)는 단일'하며 '대안 근대'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듀크대 교수가 2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듀크대가 23일 전했다.

앞서 22일 고인의 제자이자 '뉴요커'지의 음악평론가인 알렉스 로스(Alex Ross)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승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향년 90세.
1934년 4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버퍼드대를 거쳐 예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예일대, 캘리포니아대를 거쳐 1985년부터 듀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 연구에 빠져들었다. 듀크대에 따르면 "(고인은) 프랑스와 독일 이론을 미국에 가져온 초기 학자 중 한명"이었다.

1971년에 낸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형식'은 문학 이론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고인이 고민한 쟁점은 '마르크스주의 반영론'을 극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반영론)에서 이데올로기 등 문화적 '상부구조'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서 결정된다.

고인은 근대는 단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빼놓고 근대성을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따라서 '대안 근대성' 등 '다수의 근대성'이란 있을 수 없고 근대성이란 단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내건 '예술의 자율성' 담론에 맞서서 고인이 내세운 것은 '예술의 반(半) 자율성'이었다.

토대인 생산양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도 않고, 토대에 완전히 얽매여 있지도 않다는 뜻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이후의 생산양식'에 대한 전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저서 '포스트미메시스 문학이론'에서 "제임슨은 기존 마르크스주의 해석론의 반영론을 경계하면서 반영이 아니라 매개 개념으로 (상부구조와 토대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했다"며 "하지만 중요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해명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고인은 루이 알튀세르(1918∼1990)처럼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모순과 결함을 지적하기보다는 죄르지 루카치(1885∼1971)에서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헤겔주의적 전통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웠던 것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사르트르'(1961), '마르크스주의와 형식'(1971), '침략의 우화들'(1979), '정치적 무의식'(1981),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1990), '단일한 근대성'(2002), '벤야민 파일'(2020), '미메시스, 표현, 구성'(2024)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특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는 한국어와 중국어 등 13개 언어로 번역됐다.

고인이 1980년대 후반 중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분석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에선 이밖에도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1997), '후기마르크스주의'(2000), '맑스주의와 형식'(2014), '문화적 맑스주의와 제임슨'(2014), '정치적 무의식'(2015), '단일한 근대성'(2020), '언어의 감옥'(2024) 등이 번역됐다.

듀크대는 "(고인은) 사망 직전까지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고, 올봄에 새 책 2권을 출간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2008년 인문사회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홀베르그상(Holberg Prize), 2012년 미국 현대언어협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 공로상, 2014년 트루먼 커포티상을 각각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