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받으려면 멀었는데"…5060, 우르르 몰리는 '이 직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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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열풍 가신 노량진 학원가"일단 정년이 없잖아요. 나이 들어보니 고소득보다 정년이 훨씬 중요하더군요."
수강생 70%가 5060…노후 대비 목적
내년 합격을 목표로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는 최모 씨(58)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은퇴 시점이 빨랐다. 희망퇴직으로 다니던 직장을 떠난 지 1년가량 됐다"며 "아직 연금 받으려면 멀었고, 자녀도 사회초년생이라 벌써 기댈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최근 노량진 학원가에 중·장년이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직 후 재취업이 용이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한때 2030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가득하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중장년층, 노량진 찾는 이유
26일 정오께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한 주택관리사 학원. 이번 주말에 있을 제27회 주택관리사보 실기시험(2차)을 앞두고 중장년층 학생들이 자습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주택관리사 준비반의 경우 수강생의 70%가 50~60대"라며 "직장을 다니며 노후 대비로 학원에 다니는 수요도 많아 야간반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5060세대가 노후 대비 목적으로 취득하는 자격증으로는 아파트·관리사무소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주택관리사, 시설·설비 관리직으로 취업하는 전기기사, 개업이 가능한 공인중개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자격증들이 취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자격증에 관심 갖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시험 경쟁률도 높아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주택관리사 1차 시험 응시자는 2022년 1만8084명에서 지난해 1만8982명, 올해 2만809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주택관리사 1차 시험 합격자 연령을 살펴보면 40~50대가 74%, 60대 이상이 18%로 집계됐다. 30대는 7%에 불과하다.노량진 학원가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A씨는 "요즘엔 대부분 온라인으로 시험을 준비해 서점이 붐비지 않는다"면서도 "공인중개사 서적의 경우 중장년층이 많이 사 간다"고 말했다.
노량진동 내 공인중개사 학원이 있는 한 건물의 관리인 B씨는 "오전에 학원을 향하는 분들을 보면 청년층보다 중장년층 수험생이 더 많다"고도 전했다.
2년 전 서울 강남구에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차린 김모 씨(52)는 "20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직 후 개업했다"며 "사업도 고충이 많지만 일단 정년이 없다는 점에서 소득이 적은 시기에도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취업자, 사상 첫 청년층 추월
중장년층의 자격증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고령 인구 증가와 노후 소득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커졌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65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 수는 집계 이래 처음으로 청년층(15~29세)을 넘어섰다. 고령층 취업자 수가 월평균 394만명으로 380만7000명인 청년층보다 13만명가량 더 많았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내년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게 돼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할 전망이다.
이형민 에듀윌 주택관리사학원 노량진점 원장은 "중장년층의 재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년이 없고 취업이 비교적 용이한 주택관리사, 전기기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50~60대의 문의가 꾸준히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50대 후반이나 60세에 은퇴하고 나면 65세까지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연금 크레바스' 구간에 직면한다"며 "이들이 은퇴 이후에도 소득 활동을 하려는 것"으로 풀이했다.
이어 "그동안 고령 인구 일자리를 대부분 단순 업무로 상정하거나 고용 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등 복지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과거에 비해 학력 수준이 높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서 '중장년층 자격증 취득' 시장이 확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그러면서 "초고령 사회인 일본은 이미 노인 고용률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고령 인구의 정년 연장이나 재취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