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맞아요?"…집 구하러 갔다가 '화들짝' [대치동 이야기㉕]

에필로그. 대치동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대치 거주 10년 차' 이미경 대치학군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인터뷰
이미경 학군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사진=김영리 기자
'사교육 1번지'의 대명사인 대치동 일대를 일터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대치동 학생들과 부모들의 일상을 면밀히 지켜봐 온 이들이다. '대치동'을 어느 정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대치동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예로 들어보자. 학원가 공인중개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르다. 공부하는 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아서다. 고객에게 최적의 매물을 선보이기 위해선 학부모 이상으로 학군·학원 정보에 두루 박식해야 한다. 대치동 공인중개사들은 "자녀 교육 목적 없이 대치동 매물을 알아보는 손님은 드물다"며 "대부분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입 모아 말했다. 이들이 바라본 대치동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 이야기'는 마지막 시리즈로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예산은 최대 10억원 정도입니다. 대치동 전입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10년 전 대치동에 입성,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며 공인중개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경(48) 대치학군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으로 이런 질문을 꼽으며 "때로는 교육 컨설턴트가 된 기분까지 든다"고 말했다. 그는 "매물의 컨디션, 교통 편의성, 투자 전망, 병원·마트 등 생활 인프라에 더해 단지별 배정 학교, 학원 등 학원가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학군지 공인중개사의 숙명"이라며 대치동의 교육열을 체감한다고 전했다.이 대표가 대치동에서 '학군지 전문' 공인중개사로 창업한 점 역시 이곳의 교육열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달 4일 방송된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에서 학군지 입성을 고려하는 학부모가 고민거리를 안고 찾은 공인중개사로도 등장한 바 있다.

대치동 전·월세 매물을 찾는 고객 중 99%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결심한다. 실제로 고객의 상당수가 의사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라고 이 대표는 전했다. 그는 "공부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분들이 자녀도 같은 길을 걷게 하려고 오시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자녀의 나이로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의 문의가 가장 많고, 초등학교 입학 직전인 7살 자녀를 둔 손님이 뒤를 잇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초등·중학교 배정 시기에 전입한다는 설명이다. 중·고등학생 자녀와 이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이 경우 학교 배정에 구애받지 않는 특목중·고등학교 재학생이 학원가를 이용하기 위해 대치동에 입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대표는 덧붙였다.아직 자녀가 아주 어리거나 없는 '대치 키즈' 출신의 젊은 신혼부부도 부동산 임장하러 오는 등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특정 단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막연하게 '대치동 입성을 희망한다'며 찾아오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직접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업에 도움이 됐다는 이 대표는 "자녀의 성별, 남매인지 형제인지 여부, 나이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단지를 추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아예 대치동, 도곡동, 역삼동 지도를 펼쳐 놓고 학부모와 의논해 상담이 길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교육에 신경쓰기 쉽지 않은 워킹맘들이 대치동 입성을 주저하는 성향이 강한데, 직접 경험해보니 오히려 워킹맘에게 대치동 입성을 권할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밤늦게까지 학생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고, 면학 분위기가 잘 조성돼있는 만큼 워킹맘들 입장에서도 아이들 키우기 최적의 환경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이 대표는 "'대치동 학생들은 대체로 순하다'는 평가를 많이 접한다"면서 "성적과 무관하게 주변 친구들 대다수가 많은 공부량에 단련돼있는 분위기라 학습에 거부감을 갖는 사례가 타지역에 비해 적은 편인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부동산 관점에서는 어떨까. 이 대표는 대치동을 "전·월세 수요에 있어서 비교적 경기를 덜 타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부하러 들어왔다가, 공부가 끝나면 방 빼는' 순환 구조가 명확한 지역"이라면서 "서울 다른 지역보다도 전·월세 거래가 꾸준한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만큼 매물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가 이런 질문까지

"아이도 대치동에 오고 싶어 하나요?"

이 대표가 모든 고객에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그는 "전입의 주체가 학생인 곳이기에 오지랖처럼 들릴지 몰라도 혹시 이사가 부모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닌지 꼭 확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녀가 대치동 학원을 많이 다닌다고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는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외부에서 조명하는 것처럼 대치동이 극성 학부모로만 가득하고, 학생을 숨 막히게 하는 곳은 아니다"라면서도 "'대치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자녀의 자발적인 의사가 뒷받침되지 않고선 버티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녀의 성향을 충분히 파악하고 대화를 통해 전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다만 "대치동도 여느 동네처럼 전·월세 가격 범위가 넓은 건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녀가 공부에 대한 욕심과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대치동에도 전세 2~3억원 선의 빌라 매물이 있다"며 "아이가 공부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데다 스스로 대치동 입성을 희망해서 예산에 맞춰 전입하는 부모도 꽤 봤다"고 말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