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속도, 세대별 차등 바람직할까

정부가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달리하는 방안을 내놨다.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되 50대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포인트, 20대 이하는 0.25%포인트씩 인상하자고 했다.

중장년층은 빨리, 젊은 층은 서서히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것이다. 내년부터 보험료율을 인상한다고 가정해보자. 보험료율이 13%에 도달하는 시점은 50대는 2028년, 40대는 2032년, 30대는 2036년, 20대 이하는 2040년이다.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방식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찬성] 연금에 대한 청년층 불신 해소 도움…40~50대에서도 찬성 많아

현재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보험료율 9%로 소득대체율 40%(40년 납입 기준)를 보장한다.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이 적어도 19.8%는 돼야 하는데 이보다 훨씬 낮은 보험료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보험료율을 인상해도 생애 전체로 보면 큰 손해는 없다. 반면 청년층은 혜택 기간은 짧고 인상된 보험료율로 납부하는 기간은 길다. 그런 만큼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달리하는 것이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을 차등 인상한다고 가정해도 50대의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9.6%로 여전히 20대의 12.9%보다 낮다. 50대는 보험료율이 빨리 오르더라도 보험료 잔여 납입 기간이 10년 이하지만 20대는 40년가량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의무 납입 기간은 현재 59세까지다. 생애 평균 소득대체율은 현재 50세인 1975년생은 50.6%로 20세인 2005년생의 42%보다 높다.

만약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모든 세대에게 똑같이 한다면 중장년층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청년층의 불만은 커질 수 있다. 지금도 청년세대에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내가 낸 보험료로 기성세대 연금을 지급하는데, 정작 나는 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 속도를 달리하면 청년층의 이런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 연금제도의 혜택을 오래 누려온 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한다는 점에서 연금 개혁 취지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중장년층의 반발도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16~29일 전국 20~59세 국민연금 가입자 28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5.8%나 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72.1%, 20대가 70.0%로 높았지만 40대(60.4%)와 50대(64.2%)도 찬성이 더 많았다.

[반대] 사회 보험 원리에 맞지 않아…"세대간 편가르기" 지적도

보험료나 세금은 나이가 아니라 소득이나 재산 같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도 공적연금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달리하는 전례를 찾기가 힘들다.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달리하는 건 사회보험의 원칙을 훼손한다. 실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60대 다음으로 비정규직이 많은 세대가 50대다.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50대 중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지난해 20%였다. 50대 비정규직이 20~30대 정규직보다 국민연금 납부 능력이 높다고 보긴 힘들다. 그런데도 50대 비정규직은 단지 50대라는 이유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빨리 올리면서 20~30대 정규직은 20대라는 이유로 보험료를 천천히 올리는 게 과연 형평에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세대 간 형평을 잡으려다 계층 간 형평을 놓치는 꼴이 될 수 있다. ‘세대 간 편가르기’로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보험료를 급격히 올리면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이도 늘어날 수 있다. 노후보장의 핵심 수단인 국민연금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지금도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지 못하는 50대가 많다.

세대를 나누는 기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20대 이하, 30대, 40대, 50대 등 연령층을 4개로 구분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제시했다. 예컨대 40세나 49세는 보험료율 인상 속도가 연 0.5%로 같다. 도중에 연령대가 바뀌어도 인상 속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년부터 정부안대로 개혁안을 시행한다고 가정하면 내년에 49세인 1976년생은 내후년에 50세가 되도 계속 40대에 해당하는 인상 속도가 적용된다. 반면 내년에 50세인 1975년생의 인상 속도는 연 1%포인트다. 한 살 차이로 보험료 부담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50대를 고용할 때 주저할 수도 있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회사와 근로자가 보험료을 절반씩 부담하기 때문이다.

√ 생각하기 - 연금 고갈 늦추고 세대간 형평성 높일 방안 고민해야

국민연금 개혁은 불가피한 과제다. 이대로 두면 2056년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시간표가 나온다.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도 크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함께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문제는 ‘어떻게?’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화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실행 과정에서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장년층 중에는 청년층에 비해 소득이 적은 이도 많고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을 채우지 못해 노후에 연금을 못 받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또 정부 방안대로 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불과 한두 살 차이로 보험료가 크게 달라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차등 인상 구조를 정교하게 재설계하거나, 세대별로 차등 인상할 경우 정부가 저소득 중장년층 등에게 보험료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