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깜짝 발언에 이재명도 '손절'했다…두 국가론 논란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임종석 주장에…헌법학계 '명백한 위헌' 평가
여지 없는 위헌적 주장에 민주당도 '선 긋기'
"대선 향하는 이재명, 文정부와 차별화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 /사진=뉴스1
"통일,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함께 살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요.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합시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9일 평양 공동선언 기념식에서 난데없는 '두 국가론'을 제안해, 한 주 내내 정치권에 파장이 일었습니다. 임 전 실장은 헌법 3조 영토조항을 삭제 또는 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부도 없애자고 했습니다. 헌법학계는 임 전 실장의 주장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합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통화에서 "헌법은 전문을 비롯해 헌법 4조 통일조항 등 여러 조항에서 통일을 헌법적 과제로, 대통령의 의무로도 명시하고 있다"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하신 분이 이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며 통일 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임 전 실장이 삭제 또는 개정하자고 한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영토 조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는 임 전 실장이 만약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면, 혹은 같은 이야기를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면 당장 '탄핵 사유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라며 "그분이 가진 정치적 위상이나 공인으로서의 위치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 '실용주의' 노선으로 대선 향하는 이재명, 확실한 선 긋기

임 전 실장의 주장에 여권이 '위헌적 발언'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정치권의 시선은 민주당에 모였습니다. 임 전 실장의 주장에 야권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택은 '손절'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하나의 영토이며,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헌법 정신이 담겨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이 나온 지 6일 만에 나온 반응입니다.

이해식 당 대표 비서실장 역시 기자들과 만나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당 강령과 맞지 않는 주장이며 평화통일을 추진하고자 하는 그간 정치적 합의와도 배치되는 것"이라는 이 대표의 뜻을 전했습니다. 강성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현실성이 1도 없고, 무책임하다"(윤용조 집행위원장), "지난 정부 주요 인사의 급작스러운 두 국가론은 아직 (국민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이광희 의원)이라는 등의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반응은 민주당 내 민족해방(NL) 계열 중심의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의 당내 위상을 재차 드러냈습니다. 흔들리는 86그룹의 위상은 이미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한 차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임 전 실장은 지난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구갑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컷오프'(공천 배제) 당한 바 있습니다. '친문 황태자'로 불리던 임 전 실장이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홀대당하자 탈당할 가능성까지 제기됐으나, 임 전 실장은 결국 당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과거 민주당의 확실한 주류였던 운동권이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대선 지원 조직으로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혁신회의'가 임 전 실장을 비롯한 86그룹에 '대북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은 상징적인 일로도 평가됩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무섭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먹사니즘을 내세우며 '실용주의' 노선을 확실하게 채택한 이 대표가 '오직 대선'을 향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전 정부의 대북정책이 특히 2030을 중심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만연한 가운데, 이 대표가 이와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지지층 흡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우리 당이 민주당에 비해 '잘한다'던 분야가 안보 아니었나. 그런데 이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거리를 두며 새로운 방향을 설정한다면, 우리에겐 충분히 위협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를 시작한 상황에서,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