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창업하기 무섭다는 창업동아리 학생들
입력
수정
지면A22
상당수는 안정적인 취업길 택해“스타트업 시장이 안 좋다는 말이 많으니 도전하기 무서워요. 먼저 창업한 선배들도 취업부터 하라고 조언합니다.”
실패 경험 용인하는 시스템 필요
고은이 테크&사이언스부 기자
최근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만난 창업 동아리 소속 대학생이 꺼낸 말이다. 상을 탄 사업 아이템으로 회사를 차릴지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대회에서 수상한 또 다른 학생은 “그동안 창업경진대회에 꾸준히 나갔고 해커톤에도 출전했지만, 이제는 취업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삶의 주요 선택지에 ‘창업’을 넣어뒀던 청년들이 꿈을 접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창업 고려율은 1년 새 5.5%포인트 하락했다. ‘취업보다 창업’이란 구호가 곳곳에서 들린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들의 선배 중엔 학생 때 창업해 투자까지 받아낸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여러 대학에 벤처 학과가 생겼고 창업 코스도 신설됐다. 하지만 최근엔 학생 창업 열기가 이전 같지 않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사업 기획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까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만큼 창업 허들이 높아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럴 만한 게 요즘 벤처 투자 생태계는 후기 스타트업 위주로 돌아간다. 벤처캐피털(VC)이 안정적인 투자금 회수를 중요시하면서 생긴 일이다. 시드 투자 시장에서도 중고 신인만 찾는다. 성공적인 엑시트(회수) 경험이 있는 창업자가 쟁쟁한 이력을 갖춘 인사들로 드림팀을 꾸려 나와야 투자자의 눈길을 끌 수 있다. 경력이 짧은 청년 창업자들은 VC 앞에서 피칭(사업 모델 설명)할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
정부 창업 정책도 ‘될 놈’에만 집중하자는 분위기다. 극초기 창업을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예비창업패키지 예산은 2022년 983억원에서 올해 629억원으로 300억원 이상 급감했다.일각에선 ‘이럴 때 창업하는 사람이 진짜배기’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모든 예비창업자가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전을 고민하던 청년들이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 이유는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의 낙인이 될 수도 있어서다. 청년들은 창업한 선배들이 벤처 혹한기에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상황을 확인했다. 투자사로부터 빚을 떠안기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있다. 특별한 ‘믿을 구석’ 없이는 도전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창업 생태계 혁신의 싹은 지난한 실패 속에서 돋아난다. 유니콘 기업 대표나 엑시트에 성공한 사람들도 한때는 새내기 창업자였다. 벤처 혹한기와 실패에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국가 전체의 창업 정신을 깎아 먹으면 안 된다. 쏟아지는 실패 경험을 다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젊은 창업자들도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