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걸어서 가요"…학생 끊긴 체험학습장 고사 위기

'노란버스 사태' 1년
현장학습 불신·혼란만 커져

사고·소송 우려에 교사들 꺼려
도보·지하철 타고 근교체험 대체

민속촌·잡월드 올해 입장객 급감
지방 학습장도 매출 30~50% '뚝'
法 개정에도 학교선 여전히 거부
섣부른 정책에 전용시설 '직격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초등학생이 체험학습을 갈 때 13세 미만 어린이 전용 버스만 이용하도록 강제했다가 취소한 ‘노란버스’ 사태 이후 1년이 흘렀지만, 학교들이 좀처럼 체험학습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가 책임을 지는 사례가 늘자 학교와 교사들이 체험학습 자체를 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린이 체험학습이 주 수입원인 전용 시설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외부 활동을 원하는 학부모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체험학습장 줄줄이 폐업 위기

27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요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에 따르면 한국민속촌과 인천어린이과학관, 영동국악체험촌 등 주요 체험학습지 10곳의 올 1분기 입장객은 48만7113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분기(69만9714명) 대비 30.3% 줄어들었다. 수도권 초등학생 단체 손님이 많은 한국민속촌의 1분기 입장객은 14만3286명으로 지난해 전체 방문객(110만 명)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인 한국잡월드 방문객은 1분기 10만8214명으로 지난해 연간 방문객(54만5012명)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지난해 9월 법제처와 교육부는 어린이 안전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초등학생 체험학습 시 어린이 버스만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노란버스를 섭외하지 못한 초등학교가 체험학습을 줄줄이 취소하고, 전세버스업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는 한 달여 만에 이를 취소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체험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개 학교 일정은 연초 정하고, 가을 체험학습도 이때 예약하는데 이미 올해 영업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농산물 수확 체험이나 소규모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지방 중소 체험학습장이 특히 타격이 크다. 김기탁 동두천놀자숲 대표는 “작년 노란버스 사태로 초등학생 1800명가량이 예약을 취소하며 어려웠는데, 올해도 예약률이 낮다”며 “이대로라면 폐업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북 임실군 치즈마을도 존폐 갈림길에 섰다. 심장섭 임실치즈마을 위원장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여전히 절반이 채 안 된다. 평일 유치원, 초등학생 손님이 주 수입원인데 조만간 ‘치즈마을’이라는 간판을 떼게 생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외부 체험학습도 교육” 지적도

학교와 교직원들 사이에서는 ‘외부 체험학습을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경기지역 초교 교사 이모 씨(35)는 “현장 체험학습 대신 학교에 외부 강사를 초청해 비누 꽃과 냄비 받침 만들기를 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교는 상반기 학생들을 버스 대신 지하철로 이동시켜 ‘놀이동산 체험학습’을 했다.2022년 강원도의 한 초교에서 현장 체험학습 도중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인솔 교사 2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는 사실이 올 들어 교육계에 뒤늦게 퍼지면서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부모는 “올해 체험학습을 ‘한강 걷기’로 대체한다는 공지를 최근 받았다”며 “2022년 아이가 두물머리 애벌레생태학교를 다녀와 아주 좋아했는데, 이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사라져서 아쉽다”고 했다.

체험학습이 단순 여행이 아니라 학습의 연장인 만큼 재개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체험학습 안전지도사를 동행시키는 등 교사 책임을 덜어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