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이냐" 영끌족 분노하더니…이번엔 개미들 뿔났다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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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집값 급락하자 '영끌오적' 논란 불거져"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면 국내 증시가 우하향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인버스를 투자하거나 선물 풋 잡으시면 되지 않나."(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집값은 올해 들어 회복…"결국 투자는 자기 몫"
김영환 의원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금투세 토론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인버스 상품은 지수 등 투자대상 가격이 떨어질수록 수익을 내는 역투자 상품입니다.이런 발언이 확산하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을사오숏'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면서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인버스 상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국내 증시가 망하는 것에 투자하란 얘기와 같은데, 이런 상황을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빗댄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영끌오적'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2021년 집값이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22년 금리가 급등하자 집값은 뚝뚝 내려갔습니다. 가격이 내리자 부동산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영끌오적'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는데요.
집값 상승을 전망한 부동산 유튜버들과 전문가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으란 뜻)'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추천했는데, 이들을 을사오적에 비유해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단어가 빠르게 확산하자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을 빼거나 섬네일에서 자기 얼굴을 지우는 유튜버가 나왔고, 아예 언론에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전문가도 있었습니다.이후 집값은 계속 내렸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2년 서울 집값은 전년보다 7.23% 내렸습니다. 이듬해인 2023년엔 1.73% 더 하락했고요.
하지만 영원한 하락은 없었습니다. 올해 들어선 서울 집값은 3.73% 올라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곳곳에선 신고가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맺어진 서울 아파트 매매 중 기존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거래가 11%로 나타났습니다.물론 25개 자치구별로 보면 조금씩 수치가 달랐습니다. 서초구(34%), 용산구(26%), 강남구(25%) 등 핵심 지역은 비율이 수십퍼센트를 기록했고, 외곽지역인 노원구의 비율은 4%, 강북구는 3%, 금천구는 2% 등으로 비율은 낮았지만, 신고가가 나왔습니다.다만 개별 단지로 보면 아직은 혼재된 상황입니다.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핵심 지역 집값은 급락 이후 빠르게 가격이 회복했지만, 상대적으로 수요가 덜 몰린 서울 외곽 지역은 전고점 인근까진 가격이 올라왔지만, 아직 회복하지 못한 단지도 상당수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일단 핵심지를 중심으로 급매물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며 "상승 흐름도 핵심지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다만 전국적으로 집값이 치솟은 2020~2021년과 같은 상황은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핵심지와 비핵심지 사이의 양극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2022년 '영끌'은 오히려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달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시행돼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더 줄어들었고, 향후 3단계 규제가 시행되면 이젠 '영끌'이라는 방법도 택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집을 사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 가운데 몇 안 되는 큰 이벤트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은 돈을 들어가는 쇼핑이기도 하죠.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남의 말만 듣고 단순하게 일을 저지르진 말자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거주와 투자의 목적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습니다. 집을 사면서 '내 집 값은 전혀 오르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는 매수자는 드뭅니다. 2021년 '내 집을 사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공포심리와 함께 나타난 '패닉바잉(공황매수)' 역시 매수자의 선택입니다.
뭐가 됐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단 얘기입니다. 집값 폭등과 급락이 지나간 부동산 시장은 한참 '옥석 가리기'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나에게 집이 필요한지', '내가 집을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