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발레단' 유니버설이 숨막히게 그려낸 천상의 사랑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몸짓에서 대화가 쏟아져 나온 개막공연의 주역

감자티의 32회전, 박수 갈채
황홀경의 3막, 망령들의 군무
유니버설발레단이 '사랑의 발레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수석무용수들이 부부의 연을 맺고도 계속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발레 팬덤을 만들어낸 황혜민·엄재용이 그랬고, 그 뒤를 이어받아 손유희·이현준(현역 수석무용수)이 발레단의 주축을 이끌었다. 지금 수석무용수로 뛰고 있는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도 부부다. 이들은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40주년 정기공연 <라 바야데르>에서 주인공들로 호흡을 맞췄다.

함께 춤을 추다가 사랑에 빠진 이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면 공기가 달라진다. 지난 27일 오프닝 공연에서도 그랬다. 주인공을 맡은 강미선(니키야)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솔로르)가 표현한 무대는 발레가 테크닉과 젊음의 영역만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이들이 마임으로 채워가는 몸짓에서 자꾸만 대화가 들렸다. 사랑, 배신, 비탄, 비난…. 다양한 대화가 이들 사이에서 쏟아져나왔다.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는 신분의 차이로 비밀스럽게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제사장 브라민에 의해 그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국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 감자티를 솔로르와 결혼시키려는 생각을 알게 된 브라민은 솔로르를 제거하기 위해 니키야와 솔로르의 관계를 발설해버린다. 그런데 국왕은 오히려 니키야를 없애버리겠다 한다. 고전발레에서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이 그렇듯 솔로르는 어리석게도 연인을 배신하고 감자티와 혼인을 해버린다.

강미선은 슬픔으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춤을 춰야하는 운명을 처연하게 춤으로 풀어냈다. 비탄에 잠겨 춤을 추면서도 솔로르를 계속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은 단시간에 체득한 것이 아니었다. 독사가 든 꽃바구니를 들고 춤을 추다 뱀에 물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브라민이 내민 해독제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까지 그는 니키야 그 자체였다.
6년만에 돌아온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제대로 칼을 벼렸단 느낌이 들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마리우스 프티파가 1877년 만든 원작을 기반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5대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래도프가 1999년 초연한 후 러시아 황실 발레의 명맥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웅장한 무대 세트와 보석으로 치장한 코끼리, 400벌 넘는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와 함께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안무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이날 개막 공연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급 무용수들도 총출동했다. 질투에 눈이 먼 공주 감자티는 이유림이 열연했다. 지난해 입단해 무섭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무용수로 29일에는 니키야를 연기한다. 솔로르와 결혼식을 올린 2막의 감자티는 누구보다 득의양양한 태도로 고난도 32회전을 깔끔하게 해내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2막의 주인공은 감자티'라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관련 인터뷰) "중학교 때 원숭이 역할이었는데 니키야로 무대 선다니 신기해"

감초 역할에도 수석무용수들이 대거 기용됐다. 딸을 위해 니키야를 죽인 국왕 역은 수석무용수 이현준이 맡았다. 찰나의 등장이었으나 위엄과 오만함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됐다. 온몸에 황금칠을 한 수석무용수 강민우 역시 절도있는 점프와 박력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010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초연 당시, 전민철을 누르고 초대 빌리로 선발됐던 임선우는 입단 이후 착실하게 성장중인 무용수다. 그는 이날 솔로르와 니키야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탁발승으로 열연했다.
<라 바야데르>의 백미는 역시 3막이었다. 보름달이 떠 있는 망령들의 왕국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경사진 면을 아라베스크 동작을 하며 하나 둘씩 내려왔다. 목련꽃 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장면. 바로 이곳에서 솔로르는 니키야의 영혼과 만나게 되고, 망령들의 군무 속에서 회한이 깃든 니키야와 솔로르의 2인무가 펼쳐졌다. 주인공들이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사후세계에서 완성하자 감동의 박수와 휘파람이 객석에서 터져나왔다. 영화보다도 긴 3시간의 발레 공연에서 황홀경을 경험하는 건 흔치않은 일이기에.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