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문 연 조선 클럽 '금란방', 그곳에서 세상이 뒤집어졌다 [리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금란방'
술·이야기 금지된 시대, 밀주방에 모인 사람들
관객 참여형·금기 깨는 스토리 '흥미'
전통+현대적 요소 섞은 연출과 음악도 재미
창작가무극 '금란방'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극장 안을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에 쿵쿵거리는 비트가 관객을 반긴다. 원형 테이블 형식의 좌석에 놓인 술잔, 객석을 돌아다니며 그 술잔을 채우는 퍼포먼스와 함께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배우들. 2024년에 문을 연 조선 클럽 '금란방'의 모습이다.

'금란방'은 조선 영조의 금주령, 정조의 문체반정을 떠올리게 하는, 술과 이야기가 금지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뜨거운 소설을 듣는 재미에 빠진 왕에게 소설을 제대로 좀 읽어보라며 혼난 신하 김윤신, 아버지가 택한 정혼자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하는 김윤신의 딸 매화, 밀주단속특별수사대 팀장인 매화의 정혼자 윤구연, 그리고 매화의 몸종 영이까지 각자 목적을 가진 이들이 조선 최고의 전기수 이자상이 있는 '금란방'으로 향한다.

'금란방'이 존재하는 시대에는 온갖 금기가 존재했다.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행하는 이들을 단속 대상이 됐고, 자식들은 집안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주인을 모시고 있는 몸종에게 사랑은 과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세상이 있다. 바로 이야기 속의 세상. 그 안에서는 틀을 깨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은밀한 남녀의 관계, 여자들 간의 사랑까지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 다양한 상상이 펼쳐졌다. 상상에만 그치는 건 아니었다. 자유, 사랑 등의 개념은 현실의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갈망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금지된 이유다.
창작가무극 '금란방'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창작가무극 '금란방'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창작가무극 '금란방'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이야기에 감화된 인물들이 현실의 금기를 깨고 마침내 주체적인 삶을 얻어내는 결말의 공연이다. 술을 마시며 19금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뱉는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마련된 가장 강력한 장치는 '관객 참여형' 연출이다.객석에는 조명이 달린 술잔과 함께 장옷(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내외용으로 머리부터 내리쓴 옷), 메모지와 펜 등이 놓여있다. 관객의 역할이 중요한 이머시브 공연으로, 관객들은 금란방에 온 조선인 1, 2가 된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함께 장옷을 뒤집어써야 하고, 조명이 든 술잔도 여러 차례 번쩍 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위해 모인 이들과 하나가 되어 이들의 이야기에 금세 동화된다.

밀주방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상반되는 배우들의 자유분방한 몸짓, 행복함이 느껴지는 표정, 짜릿한 디제잉까지 어우러진 현장에서 함께 어울리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금기를 깨려는 거야?'라는 질문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들의 모든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무대 위아래의 경계 없이 공연 자체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 한 마디로 매 순간 재미있다.
창작가무극 '금란방'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음악적으로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조선 클럽이라는 공간의 특색에 맞춰 전통적인 한국 음악 요소에 클럽 디제잉과 밴드 라이브를 더해 듣는 쾌감이 상당하다. 절절한 스토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해금, 대금 소리에 빠져들다가 이내 드럼, 기타 사운드에 몸을 들썩이게 된다.'금란방'은 서울예술단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으로, 2018년 초연, 2020년 재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었다. 오늘(28일) 공연을 끝으로 서울 무대를 마치며, 오는 10월 11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또 한 번 관객들과 만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