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에 한 쪽 눈 잃은' 루슈디 "표현의 자유 없인 모든 자유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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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피습 사건 비망록"말로 폭죽을 쏘아올리는 작가"(에드워드 사이드)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의 인생은 2022년 8월 12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이날 미국 뉴욕에서 강연 중이던 루슈디는 무대 위로 난입한 괴한의 칼에 10여 차례 찔렸다. 가까스로 생명줄을 붙잡았지만 칼이 꽂힌 오른쪽 눈은 실명됐다. 왼손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고, 복부 자상으로 간을 비롯한 다른 장기도 손상을 입었다.
'악마의 시' 발표 이후 살해 위협
10여차례 칼 찔려 왼쪽 눈 실명
언어는 세상을 베어내는 칼
"사랑으로 혐오를 이겨내"
루슈디의 신작 <나이프>는 이날의 끔찍한 사고를 기록한 비망록이다. 루슈디는 1988년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 문화권에서 신성 모독으로 논란이 되면서 살해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공개적으로 루슈디 암살 명령을 내렸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역시 무슬림으로, 그는 "루슈디는 이슬람을 공격한 사람"이라고 했다.루슈디는 이번 책에서 피습 전후 상황을 풀어놓으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강연이 있기 이틀 전 불길한 꿈을 꾸고 강연에 나가길 망설인 내용부터 객석에 있던 범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온몸이 칼에 무참하게 찔리는 과정과 이후 회복 과정까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피해자로서 그는 바닥에 쓰러져 본인 몸에서 흘러 나온 피 웅덩이를 바라보던 순간을 떠올리다가도, '나는 왜 맞서 싸우지 않았을까?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루슈디는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이프>를 쓰는 건 처음엔 무척 괴로웠다"고 밝혔다.
책엔 본인을 찌른 가해자와 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가해자에게 보내는 말 등이 적혀 있다. 가해자는 정작 <악마의 시>를 불과 두 쪽밖에 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루슈디는 "가해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 책의 등장인물로 만들고 싶었고, 이제 그는 내 이야기의 일부, 나의 것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공격한 자가 읽지도 않은 내 책 <악마의 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도 했다.
끔찍한 사고를 다루고 있지만 루슈디는 책에서 특유의 위트를 놓치지 않는다. 헬리콥터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안전 요원으로부터 체중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치욕스러운 숫자'를 말해야만 했다거나, '신을 믿지 않는 개자식'임에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부분 등에선 아픔을 유머로 승화한 흔적이 엿보인다.루슈디는 "독자로서 나는 유머와 재치가 전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이번 책의 목표는 범죄에 대한 진술일 뿐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로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글 때문에 수많은 위협에 시달려 온 루슈디는 책에서 언어를 '칼'이라고 표현한다. 중립적인 도구인 칼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얻는 것처럼, 언어도 마찬가지다. 루슈디에게 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143쪽) 도구다.
그는 "글쓰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어버린다"며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 가치를 지켜 온 이유"라고 덧붙였다.피습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 온 루슈디가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아내의 헌신을 비롯해 주변에서 건넨 지지들이 루슈디를 단단하게 붙들었다. 루슈디는 "이번 책은 궁극적으로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혐오와 폭력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 책이 우리 모두가 경험했을 그런 순간에 대해 해줄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혐오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혐오가 승리하는 건 아닙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