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약발 없었다…1800억 쓸어 담은 네이버 개미 '피눈물'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4000억 자사주 매입 발표했지만 주가 또 하락
개미들 '바닥' 기대하며 두 달간 1800억 담아

하반기 네이버 목표가 하향 리포트 24개 쏟아져
증권가 "AI 로드맵 불투명…실적 반영돼야 모멘텀"
네이버 사옥. /네이버 제공
여의도에서 '개미 무덤'이라는 오명을 쓴 네이버가 자사주 추가 매입 및 소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주가는 되레 하락했다. 증권가(街)에선 인공지능(AI) 사업의 실적 반영이 선행돼야 주가 상승 동력이 생길 것으로 전망하며 목표주가를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네이버가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발표한 지난달 30일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0.59% 하락해 다시 16만원대로 주저앉았다. 네이버는 올해 말까지 약 4000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등 특별 주주환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전날 발표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네이버가 지난해 발표해 3년간 추진 중인 주주환원 정책과는 별개의 건이다.이번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의 재원은 라인야후 대주주인 A홀딩스의 배당금이다. 라인야후가 내년 개정되는 도쿄 1부의 상장 유지 요건(유통주식 35% 이상)을 충족하기 위한 자사주 공개 매수에 나서자, A홀딩스가 참여해 보유 지분 일부를 팔았고 이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에 배당금으로 나눴다. A홀딩스는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세운 일본 합작법인이다. 이에 따라 A홀딩스가 보유한 라인야후 지분율은 63.56%에서 62.50%로 낮아졌다.

네이버 주가는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공세와 AI 사업 부진에 모멘텀을 잃으면서 올해 들어서만 24.37% 하락했다. 지난 5월에는 라인야후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한번 주주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지난 8월에는 이를 반영해 주가가 15만원대까지 추락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를 통해 네이버 주식을 매매한 개인투자자 중 현재 평가차익이 플러스 구간에 있는 투자자는 7.6%에 불과했다. 나머지 92.4%는 손실 구간이다.

과도하게 하락한 주가에 개인 투자자 사이 '바닥 잡기' 심리가 발동하고 있다. 네이버가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지난 8월5일 이후 전날까지 개인 투자자는 네이버 주식 179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개인 순매수 상위 종목 6위에 달하는 규모다. 기관 투자자도 2094억원어치 사들였다.최수연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도 연일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서 책임경영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달 6일 네이버 주식 1244주를 1억9904만원에 장내 매수했다. 자사주 매입으로 최 대표가 보유한 주식은 종전 4474주에서 5718주로 늘었다. 네이버 임원들도 지난달에만 총 2819주의 주식을 매입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네이버의 주주환원 의지에도 불구하고 주가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한 리포트가 가장 많이 나온 기업은 카카오(29곳)가 1위, 네이버(24곳)가 2위였다. 최근 3개월 간 목표가를 올린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일례로 다올투자증권은 네이버 목표가를 21만원까지 내렸다. 김하정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디스플레이 광고 성장률은 회복했으나, 장기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목표가를 24만원에서 22만원으로 내리면서 "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매출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고 주력 사업인 광고와 커머스 등에서 경쟁업체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전문가들은 네이버 주가를 띄울 수 있는 모멘텀을 공통적으로 AI 사업에서 찾고 있다. 네이버는 현재 검색 서비스에 '큐(Cue:)'라는 AI 서비스를 접목해 품질을 높이는 등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도 국내시장 특성에 맞춘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으로 확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빅테크에 맞선 한국어 기반 토종 AI인 '소버린(sovereign) AI'도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는 다음달 중순 개발자 컨퍼런스인 '단(DAN) 24'를 통해 최신 AI 기술을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