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아들의 살인, 부모에게 고통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우아하고 참담한 우화
허진호 감독 리뷰

당신의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2024 제44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디렉터스 위크 극본상' 수상

2023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 공개
호화로운 디너 테이블 위로 값비싼 레드 와인과 화려한 식기에 담긴 요리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그러나 테이블에 앉은 그 누구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누군가는 처참한 심정으로, 또 누군가는 참담한 눈초리로 서로의 ‘결정’을 기다린다.
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가족>은 자신의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둘러싸고 대립하게 되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는 ‘가족 스릴러’다.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의 소설 ‘디너’(헤르만 코흐)를 기반으로 한 것이면서 영화로는 네덜란드와 이태리 그리고 미국 버전에 이은 4번째 영화화다.
장편소설 &lt;디너&gt; 헤르만 코흐 지음 / 이미지 출처. © KYOBO BOOK CENTRE
한국 버전은 원작에 있던 많은 설정을 바꾸고, 로컬라이즈 했다. 이야기는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지극히 세속적인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그의 동생이자 원칙주의자 의사 ‘재규’(장동건) 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형, 재완은 어리고 예쁜 떡집 사장, ‘지수’ (수현) 와 재혼해서 아기까지 가졌지만 재완의 십대 딸, ‘혜윤’ (홍예지) 은 이들 모두가 증오스럽기만 하다. 동생, 재규는 봉사단체에서 일하면서도 아들의 교육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간병까지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서로 살가운 관계는 아니지만 두 부부는 주기적인 ‘디너 미팅’을 통해 최소한의 ‘의’는 지키는 보통의 가족이다. 그러나 형제 커플의 정기적인 디너 미팅은 이들의 아이들, 즉 혜윤과 재규의 아들, ‘시호’ (김정철) 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면서 혈투의 장으로 변모한다.
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보통의 가족>의 말미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 그리고 그 반전은 놀라우면서도 암담한, 일종의 종말론적인 결말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이야기적 반전보다 더 주목할 만한 (반전 아닌) 반전은 이 어두운 영화가 바로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신 멜로영화의 전성시대를 ‘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허진호 감독은 그간 한국 영화를 지배했던 신파 멜로의 종언을 알린 인물이며, 멜로 장르를 사색의 장으로 진일보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 <보통의 가족>은 그의 작가적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도 멜로적 감성과는 거리가 먼, 혹은 정반대의 첨예함과 암울함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비극을 그리는 방식이다. <보통의 가족>이 암시하는 더 큰 비극은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 그 자체보다, 이후에 아이들이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구원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보통의 가족>은 ‘사건 (event)’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 이후의 이야기 (post-event)에 중점을 두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보통의 가족>의 어른들은 (적어도 두 가정 중 한 가정은 그렇다) 아이들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의 선택은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보다도 더 아둔하고 위험한 선택이며 그렇기에 그 선택은 이들 가족에게 더 총체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온다.
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보통의 가족>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영화다. 극도로 우울한 결말을 포함해 영화 중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악마성,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부모들의 위선 등 영화는 이들의 모순적인 윤리와 이중적인 작태를 그리는 데 있어 에두르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를 보고 나면 칼에 베인 듯 아프면서도 뭔가 답답한 마음과 공포심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게 된다. 동시에 <보통의 가족>은 매우 잘 만들어진 ‘우화’다. 영화가 주는 아픈 ‘멜랑콜리’는 비극적인 사건을 목도하고 느끼는 감정이라기보다 그것이 가진 보편성에서 기인한다. 과연 현시대를 누군가의 가족 구성원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천만한 일인가.

돌아온 허진호 감독이 반갑다. 전혀 다른 장르와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이번 영화가 가진 성찰적이고도 맹렬한 이야기의 힘, 그리고 이미지의 저력은 분명 그의 필모그래피를 빛나게 할 만한 또 다른 성취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는 고혹적인 클래식 선율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보통의 가족'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보통의 가족] 메인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