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게 전부 아냐"…작가 13인의 '보이지 않는 세계'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미술관에서 11월24일까지
이석주·권오상 등 국내작가 13인
시간·전설·죽음 등의 주제 다뤄
30명의 철제 인물이 벽을 등지고 선 배형경의 ‘월-휴먼’(2023). 서울대미술관 제공
“너는 나를 봤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한 예수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를 꾸짖으며 건넨 말이다. 도마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자, 보다 못한 예수는 제자의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상처 속으로 밀어 넣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의심하는 도마’(1602~1603)로 잘 알려진 장면이다.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도마한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카라바조의 명화를 오마주한 극사실주의 화가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17)에 답이 있다. 예수의 형상은 원작보다 흐릿하게 묘사됐고, 화면 하단엔 거대한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됐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 2000년 전 도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은 관객을 시험하는 전시다. 시간의 흐름, 노화와 죽음, 전설과 민담 등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이석주를 비롯해 권오상 김두진 노상균 신미경 등 13명의 국내 작가가 수수께끼를 던진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에서 출발한 전시”라며 “작품을 ‘보는’ 관객은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의미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서구의 피에타부터 동양의 요괴까지

가장 많은 작가를 연결하는 공통분모는 종교적인 모티프다. 고전적인 화풍의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안재홍의 ‘The Giver’(2022~2023)로부터 전시는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동물의 사체와 광채를 발산하는 성인(聖人)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권오상과 김두진은 모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선보였다. 권오상의 ‘공백’ 시리즈 신작은 피에타 이미지를 디지털로 구현하고, 이를 픽셀 단위로 해체하는 과정을 담았다. 김두진은 같은 이미지를 사슴의 뼈로 재현했다. 절대적인 권위의 종교적 표상을 먹이사슬 밑바닥의 생물로 묘사한 셈이다.

아시아의 전통적인 요소에서 착안한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수련은 선녀와 요괴 등의 이미지를 통해 이른바 ‘동양풍’ 판타지가 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김상돈은 쇼핑 카트 위에 상여를 얹은 ‘카트’(2019~2020)로 물질 사회와 전통문화 사이 이질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환경·과학·시간…꼬리를 무는 질문들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조각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전시장 3층 중앙에 전시된 두 점의 조각 작업도 손에 잡히지 않는 주제를 다룬다. 제주도의 방파제 구조물을 전시한 김현준의 조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30명의 철제 인물이 벽을 등지고 선 배형경의 ‘월-휴먼’(2023)은 평등을 다룬다.몇몇 작품은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야 본모습이 드러난다. 전시장 3층 3.3㎡ 남짓의 방에 따로 전시된 노상균의 ‘측광 회화’가 대표적이다. 빛을 흡수한 뒤 어두운 배경에서 발광하는 특수 안료로 그린 작품이다. 관객은 전시장이 30초마다 암전되는 동안만 그림의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비누를 사용해 고대 조각상을 빚은 신미경의 ‘풍화 프로젝트’는 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10여 년에 걸쳐 표면에 이물질이 붙고, 재료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철근 뼈대가 작품을 뚫고 나온 모양새다.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 시리즈는 그라인더가 니켈 동전이나 아톰 인형 등을 천천히 분쇄하는 과정 자체를 기록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