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가짜 전문가 전성시대

틀린 정보로 사회적 혼란 불러
'진짜 전문가' 나서 바로잡아야

오상헌 산업부장
1000가구 넘게 사는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큰불이 난 건 7년 전 이맘때다. 경차 ‘모닝’에서 시작한 불에 주변 차량 163대가 타거나 그을렸고, 지하 통신시설은 엉망이 됐다.

두 달 전 인천 청라 아파트 ‘벤츠 전기차 화재’에 못지않은 피해를 준 사건이지만,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가솔린 차에서 난 불이어서다.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뉴스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넘겼을 터다. 그래서 ‘90% 이상 연료통을 채운 차, 지하 주차장 진입 금지’ 같은 황당한 대책은 뒤따르지 않았고, 당시 스프링클러 미작동 이유를 추궁하는 ‘정상적인’ 후속 절차가 이어졌다.지하 주차장, 큰 피해, 스프링클러 미작동 측면에서 판박이 사고였지만 벤츠 전기차 화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누군가 전기차에 ‘달리는 시한폭탄’이란 프레임을 씌우자 서울시는 뒤도 안 돌아보고 ‘90% 이상 충전한 차, 지하 주차장 진입 금지’를 발표했다. 완성차 메이커, 배터리 기업, 관련 전문가들의 비웃음과 반발을 산 바로 그 대책이다.

반발 이유는 명쾌하다. 국산 전기차에 주로 들어가는 삼원계(NCM) 배터리는 g당 최대 275㎃h 정도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데, 배터리 제조사는 200~210㎃h만 쓰도록 설계한다. 자동차 회사는 여기에 더해 ‘100% 충전’으로 계기판에 떠도 실제론 95% 정도만 충전되도록 안전마진을 둔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차단·제어한다. 3중 안전장치를 둔 만큼 충전율 규제를 추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배터리 전문가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서울시는 왜 엉터리 대책을 내놨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짜 전문가’의 말만 곧이곧대로 들은 것이다. 대책 발표 전 서울시 회의에 참석한 A교수는 수차례 언론에 나와 “전기차엔 과충전 방지 장치가 없으니 차주들이 알아서 90% 이하로 충전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에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면 사실상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전문가의 섬뜩한 경고에 많은 사람이 전기차 구매를 포기했고, 이미 산 사람들은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 실제론 전기차 1만 대당 화재 발생률(지난해 1.32건)이 내연기관차(1.86건)보다 적고, 스프링클러만 작동하면 화재 진압 시간이 비슷한데도 말이다. 온 나라가 잘못된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이 정작 본질인 스프링클러 미작동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가짜 전문가의 폐해는 정치권과 맞물릴 때 더 커진다. 산업자원부 전력심의관으로 일한 ‘에너지 전문가’ 이현재 하남시장이 전자파 위협을 거론하며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막은 게 그런 예다. 이 변전소에 들어가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 설비가 전자파를 내지 않는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이 시장은 하남에서 당선된 추미애 의원과 맞장구치며 ‘시민 건강권’ 얘기만 한다. 몇 년 뒤 수도권에 전력대란이 오건 말건, 당장의 표보다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따지고 보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수산물 괴담, 광우병 파동, 사드 전자파 참외 소동 등 밑도 끝도 없는 괴담이 퍼진 배경에도 가짜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국력을 낭비했다.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려면 이들이 설 땅부터 없애야 한다. 가짜 전문가들의 거짓 정보와 과장된 논리가 정치권과 만나 공포 마케팅으로 증폭되는 걸 막으려면 ‘진짜 전문가’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가짜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걸 언제까지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