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칼부림 막아준 '프랑스의 상징'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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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
프랑스의 상징 바게트
얼마 전 한국 누리꾼들에게 "프랑스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에펠탑, 루브르, 노트르담, 베르사유 같은 건축물이나 디올,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 브랜드를 생각하고, 음식으로는 빵, 바게트, 크루아상, 와인, 버터, 라따뚜이 그리고 바캉스와 벼룩시장을 떠올린다고 대답했다.
'프랑스' 하면 떠올리는 인물로는 음바페, 이다도시, 에디트 피아프, 장 르노, 빅토르 위고(레미제라블), 톰 크루즈(올림픽 폐막식 영향)도 있었다.
그 외에도 특정한 물건이나 장소가 아닌 센강에서 대화를 나누는 커플의 낭만적인 모습이나 말 많고 불평불만 많은 프랑스인의 성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그리고 파리에 한정되긴 하지만 더러운 도로, 파리지앵들의 불친절함, 오만함, 소매치기, 지린내, 쥐, 개똥 등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나왔다. 반면 여행할 때 고생했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재수 없는데 이쁘긴 더럽게 이쁜 여자, 낭만과 교만의 상반된 면이 공존하는 애증의 나라라고 한국 네티즌들은 프랑스를 말하고 있었다.빵의 나라 프랑스!
그중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역시 에펠탑! 두 번째는 빵, 특히 바게트였다. 심지 빵을 먹기 위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빵은 일본어의 포르투갈어 계통 외래어인 '빵(パン, 판)'에서 유입되었다. 빵은 프랑스어로 뺑(Pain)이다. 프랑스의 빵 중 가장 잘 알려진 빵은 크루아상과 바게트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에서는 크루아상은 주로 아침 식사에만 먹지만 바게트는 한국인의 밥처럼 아침, 점심, 저녁 식사에 꼭 먹는 빵이다.
바게트는 불어로 막대기, 지팡이, 젓가락을 뜻하며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 4가지 재료로만 사용하여 만들어진 빵이다. 프랑스 정부는 제빵 조약을 만들어 바게트 모양을 법령으로 길이는 약 65㎝, 지름은 5~6㎝, 무게는 250g 내외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바게트 제조법과 문화가 2022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재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을 때 “바게트는 늘 함께하는 프렌치 라이프 스타일, 프렌치 노하우,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250g의 마법이며 완벽함입니다.”라고 했다.
바게트를 만드는 공정이 어려워 빵 만드는 사람들을 흰색 광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인상된 전기 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제 빵집들은 하나씩 문을 닫고 있으며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배달한 냉동 바게트를 빵집에서 굽기만 하거나 새벽에 배달받아 판매만 하는 빵집들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사용하는 밀가루에는 농약 성분이 많고 공장에서 화학 첨가물을 넣어 여행 중 바게트를 먹고자 하면 BIO라고 쓰여있는 빵집에서 유기농 수제 바게트를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파리 지하철 공사장 사고를 방지한 바게트!
바게트의 기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중 하나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때 1~2kg 정도 되는 큰 덩어리의 빵 대신 가볍고 군인들의 주머니, 혹은 군복 코트 속이나 바짓가랑이에 길게 넣고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 바게트가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리고 기존 빵은 한 덩어리를 며칠간 두고두고 칼로 잘라 먹어야 했는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부유층에서 늘 신선한 빵을 먹고자 하고 빵 속살보다는 바삭한 빵 껍질을 선호하여 바게트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할머니들은 바삭거리는 껍질만 먹고 말랑거리는 속살은 식사 중 뭉쳐두었다가 새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 다이어트 중인 젊은 여성들은 살찐다고 껍질만 먹고 속살을 뭉쳐서 버리기도 한다.
바게트는 대중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파리 시내 전철 공사를 시작하면서이다. 1898년 전철 공사가 시작되어 2000여 명의 근로자가 건설 현장에서 17개월간 일하여 1900년 만국박람회에 첫 번째 라인이 가동했다.전철 공사를 위하여 프랑스 전역에서 인부들이 파리로 올라왔다. 인부들은 각 지방색이 달라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둥글고 딱딱한 호밀빵을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작은 칼로 잘라먹곤 했는데 싸움이 붙으면 이 칼을 빼서 싸우기도 하여 인부들이 서로 다치거나 사망자도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공사 책임자는 가볍고 운반하기 쉽고 칼 없이 손으로 잘라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 달라고 제빵사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지금의 바게트가 나오게 되었고 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 전역으로 급격히 파장되었다.매년 파리의 최고 맛있는 바게트 대회가 열리고 2023년에 30주년을 맞았다. 200여 명의 파리의 제빵사가 참가하여 굽기, 모양, 냄새, 맛, 부스러기의 5가지 기준으로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는 4000유로의 상금을 받고 1년간 엘리제궁의 식탁에 빵을 공급하는 명예를 얻게 된다.프랑스 사람들은 바게트를 어떻게 먹나?
아침 식사에는 바게트에 버터나 과일잼을 발라 카페오레, 코코아, 찻잔에 풍덩 담가 먹는다. 그리고 웨프 아 라 코끄(Œuf à la coque)를 먹곤 하는데 계란을 약 3~5분간 삶아서 흰자 부위는 어느 정도 익고 노른자 부위는 익지 않아서 꼬께티에(coquetier)에 담아 작고 길게 자른 바게트 무이에뜨(mouillette)를 계란 속에 찍어 먹곤 한다.점심에는 한국에서도 이제 너무 잘 알려진 잠봉뵈르(Jambon beurre)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데 특히 버터만 살짝 바르고 잠봉 한 장과 에멍딸 치즈 한 장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르 파리지앵이라고 부른다.바게트는 하루가 지나면 딱딱해져서 먹을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온 것이 뺑 페르뒤(Pain perdu 잃어버린 빵)이다. 딱딱해진 빵을 우유에 적셔 물렁거리게 만든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로 구워낸 후 설탕이나 초콜릿 혹은 과일잼을 발라 먹는다.
프랑스의 상징 바게트와 패션!
베레모, 세일러 티셔츠, 레드와인 한 잔, 팔 아래 바게트를 끼고 있는 파리지앵의 이미지는 약간 과장되어 있지만 프랑스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바게트는 프랑스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용의 양식이다. 프랑스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Willy Ronis)의 유명한 사진 쁘띠 파리지앵은 어린 소년이 바게트를 팔에 끼고 달려가는 모습이다. 마치 가족들과 함께할 저녁 식사를 생각하며 신이 난 얼굴로 달려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당시 사진들은 보면 바게트의 크기가 엄청나게 길었던 것을 볼 수 있다.패셔니스타라면 펜디(Fendi)의 바게트 백(bag)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게트 백은 1997년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디자인했는데 매 시즌 새로운 색상과 가죽, 원단 등을 이용하여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특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인 사라 제시카 파커가 들고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It Bag이 되었다.이처럼 바게트 클러치가 'It Bag'이 되자 2020년 파리 패션위크에 프랑스 디자이너 아멜리 피샤르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도 바게트 모양의 클러치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고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바게트 백이 너무 비싸 살 수 없으면 진짜 바게트에 체인을 달아 사용하라고 유머러스하게 연출하기도 했다. 바게트 백은 2024년 패션 트랜드로 등장하였다.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