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이주한 자메이카 소년, 할렘가 쓰레기에서 희망을 찾다

전시 - 나리 워드 '온고잉'

길거리 물건들로 작품 만들어
"조각조각 깨진 유리가 더 찬란"
나리 워드의 ‘OHM’(2024). 리만머핀 서울 제공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나리 워드(61·사진)는 ‘빈민가의 대명사’ 할렘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다. 폭력을 상징하는 방망이가 치유의 도구로, 죽음을 암시하는 촛농은 생명의 메시지로 뒤바뀐다. 할렘의 길거리에서 수집한 사물을 재활용한 결과다. 이런 그가 신작 10여 점을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

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앤드루에서 태어난 작가는 열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전전하다가 할렘가에 정착했다. 30대부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사물로 할렘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온고잉’이라는 주제로 선보인 작품들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할렘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데믹으로 장례식장마저 문을 닫았던 시절이다. 할렘의 주민들은 길거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작가는 꺼져가는 촛불에서 치유의 희망을, 그리고 전염병도 갈라놓지 못한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제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슬픔과 상실이 아닙니다. 조각조각 깨진 유리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죠.”

워드는 전시의 부제로 ‘치유’를 꼽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메디슨 배트’(2011)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리 방망이 속을 솜으로 채운 작품으로, 때론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치유의 도구로 재해석했다.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레스팅 릴리스’(2024)도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푸른빛으로 녹이 슬어가는 동판에 입힌 구리 선이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다. 작품 가장자리를 따라 들어선 구리 선은 할렘의 보도블록을 형상화한 장치다. 구리 못으로 새긴 다이아몬드 형태의 장식은 콩고의 우주론을 패턴화한 것으로, 아프리카의 기도문과 기독교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언타이틀드 워닝’은 금박담요를 활용했다. “금박담요는 환자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한 의료 도구입니다. 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땐 생존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죠. 다음 전시에는 금박담요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전시는 10월 19일까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