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매수戰 4일 결판…주가 75만원 넘느냐에 승부 갈려

최윤범 3兆 승부수에도…미궁 속 고려아연
83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 추진

MBK의 가처분 신청 기각에…崔 "유통주식 18% 매입"
법정 분쟁 가능성 남아 있어…주가 71만원대로 마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인수 시도에 맞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3조1000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발행 주식의 18.0%를 자사주로 사들이기로 했다. 자사주 매입 가격은 주당 83만원으로,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공개매수 가격(75만원)보다 10.7% 높게 책정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계획이 각종 법적 문제로 불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이날 주가는 MBK 연합의 공개매수 가격을 밑도는 71만3000원에 마감했다. 최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최종 승부는 MBK 연합의 공개매수 마감일인 4일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고려아연은 이날 영풍 측이 제출한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곧바로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 안건을 의결했다. 2조6634억원을 투입해 주당 83만원에 총 발행 주식의 5.87~15.5%를 사들이는 내용이다. 여기에 백기사로 참여한 글로벌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탈이 4296억원을 들여 고려아연 지분 2.5%를 매입하기로 했다. 모두 3조930억원을 투입해 최대 18.0%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사주 취득은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대응”이라며 “매입한 자사주는 전량 소각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자사주 매입 발표에도 고려아연 주가는 이날 3.63%(2만50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MBK 연합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낸 만큼 공개매수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MBK 관계자는 “고려아연 정관상 자사주 매입에 쓸 수 있는 최대 금액은 586억원”이라며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자사주 매입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4일에도 고려아연 주가가 75만원을 넘지 못하면, 이번 분쟁은 MBK 연합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반면 75만원을 뚫고 올라가면 기존 주주들이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고 4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보유 주식을 팔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고려아연은 일단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다.

"베인과 연합…1株 83만원에 고려아연 3.1조 매입"
최 회장 발표에 주가 74만원 갔다 71만3000원으로 하락 마감

“아직 누가 이길지 모른다. 모든 건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마감일인 4일 고려아연 주가가 공개매수가 75만원을 넘는지에 달려 있다.”(한 자산운용사 대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초유의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발표하자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최 회장의 반격 카드는 시장 기대 이상이었다. MBK·영풍의 공개매수가 75만원보다 10.7% 높은 83만원을 공개매수가로 제시했고, MBK(14.56%)보다 3.44% 많은 지분 18%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 15.5%는 소각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려아연 주가는 장중 74만원까지 올랐다가 등락을 반복한 뒤 3.63% 상승한 71만3000원에 마감했다. 이 가격대라면 고려아연 유통주식 30% 안팎을 거머쥔 기관투자가 상당수가 4일 MBK의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 반응이다. MBK와 영풍 연합은 공개매수 최소 요건인 고려아연 지분 7% 이상을 확보하면 사실상 승기를 잡게 된다.

○자사주 공개매수 기대 이상이었지만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1.60% 떨어진 67만700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고려아연이 대규모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한 이사회를 연다는 사실이 한국경제신문 보도로 알려졌지만 시장은 믿지 않았다. MBK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금액 한도가 6조원 수준이 아니라 586억원에 불과하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오전 9시20분께 법원이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고려아연이 영풍의 특별관계자이기 때문에 공개매수 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이 불가능하다는 영풍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최 회장 측은 이사회에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통과시켰다. 고려아연은 메리츠금융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증권사 등과 논의하던 자금 조달책도 빠르게 진행해 실탄을 쌓았다. 고려아연은 메리츠금융그룹에서 사모사채로 1조원을 긴급 조달하는 등 약 3조1000억원을 금융권에서 빌렸다.

고려아연은 4일부터 23일까지 자사주를 공개매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탈과 함께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주당 83만원에 최소 5.87%, 최대 18.0%를 매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자사주로 15.5%를 사고 베인캐피탈 측이 2.5%를 매입하기로 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 대상 지분(최소 6.96%, 최대 14.56%)보다 많다.최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가 필요한 7~8% 지분을 확실하게 잡고, 투자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죄수의 딜레마’ 빠진 투자자

최 회장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시장은 미지근하게 반응했다. 고려아연 주가는 자사주 공개매수 계획이 발표된 직후 74만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이내 하락세로 전환해 71만3000원까지 미끄러졌다. 이날 전체 지분의 3.7% 수준인 77만 주가 거래됐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날 매매가 많을수록 MBK의 공개매수에 응할 수 있는 주주는 적어진다. 지난달 30일 기준 매수자에 한해 4일 마감인 MBK 공개매수에 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K 연합은 최 회장 측의 계획에 맞서 이날 곧장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주가가 높게 형성된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건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 행위라는 게 MBK 주장이다.

시가총액 14조7000억원대에 이르는 고려아연의 유통주식은 국민연금(7.8%)을 포함해 30%대 초반 수준이다. 대부분 기관 주주다.시장에선 결국 4일 주가 향방에 따라 이번 공개매수 대전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주가에 따라 MBK 연합이 고려아연에 맞서 다시 공개매수가를 인상할 수도 있다. MBK 연합이 공개매수 조건을 변경하면 그날부터 공개매수 마감 기간은 10일 늘어난다. 조건을 변경하더라도 공개매수는 MBK 연합이 먼저 끝나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가들은 마지막날까지 상황을 지켜보며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성상훈/박종관/김형규/하지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