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국장 탈출은 지능 순"

미국 개미들의 성지로 불리는 주식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는 2021년 초 게임스톱을 둘러싼 월가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 간 투자 전쟁에서 개미들의 본거지 역할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가장 유행한 말이 “Hold the line, Bros! (형제들이여 전선을 사수하라)”였다. 게임스톱에 대한 헤지펀드의 대규모 공매도에 개미들은 이 구호 아래 ‘존버’의 미국식 표현인 ‘diamond hands’를 외치며 주식 매집으로 맞섰다.

미국에 월스리트베츠가 있다면 한국엔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가 있다.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2020년 가을 개미들을 미국 증시로 이끄는 일련의 유행어를 양산했다. “돈을 넣어두면 자동으로 돈이 더 생겨. 한마디로 돈이 복사가 된다고” 하는 ‘돈 복사기론’과 함께 “나스닥은 신이고, (나스닥에 투자하는) 나는 무적이다”라는 ‘나스닥 신론’이 대표적이다.서학 개미를 자극하는 유행어들은 한층 자극적으로 진화했다. 최근 증시의 최대 유행어는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다. 똑똑한 투자자들은 미장(미국 증시)으로 ‘주식 이민’을 가고, 멍청한 투자자만 국장(한국 증시)에 남는다는 참으로 자조적인 표현이다. 일본에도 자국 증시에 대해 ‘오와콘’(オワコン·한물간 콘텐츠)과 같은 말이 있지만, 자조의 강도가 우리 쪽이 훨씬 강하다.

통계를 보면 국장 탈출론에 반론을 대기 어렵다. 올해 세계 주요 22개국 증시와 3분기까지 수익률을 비교하면 코스피는 20위, 코스닥은 꼴찌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통화 가치가 폭락한 멕시코보다도 저조하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의 시가총액이 35조원 증가한 반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은 110조원 증발했으니, 국장 잔류자는 IQ가 낮은 사람이라는 비웃음을 살 만도 하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거울이다. 떨어질 땐 ‘털썩’, 오를 땐 ‘찔끔’ 식의 취약한 증시는 허약한 경제 펀더멘털에 기인하는 것이다. 성장률 복원과 생산성 향상과 같은 구조 개혁 없이 증시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인 김수영은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먼저 일어난다고 썼다. 지난한 일이더라도 경제가 풀과 같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야 증시도 산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