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도심 민폐시위…"또 도로통제냐"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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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집회·시위 허용에…시민들 불만 폭발“평소 5분이면 지나가던 남대문 거리가 꽉 막혀 40분이나 걸렸어요. 결국 거래처 중요 미팅을 취소했습니다.”
광화문 일대에 집중됐던 집회
이젠 용산 등 시내 곳곳 확산
평일·주말 극심한 정체로 몸살
경찰이 막아도 법원 번번이 허용
시민들 안전·권리 침해 눈감아
서울 광화문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승준 씨(40)는 지난 2일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예상치 못한 교통 상황에 발이 묶였다. 10월 첫째 주 징검다리 연휴 사이의 평일이던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조는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과 숭례문 사이에서 대규모 집회를 했다. 경찰이 숭례문 방면 4차로 중 3개 차로를 통제하면서 한 개 차로에 택시, 버스, 일반 차량 등이 몰려 극심한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반경 2㎞ 내 도로는 교통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과거 광화문 일대에 집중됐던 집회가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이후 서울 도심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신청만 하면 허용하는 관대한 집회 제도와 길어진 시위 동선으로 인해 ‘돌발’ 교통체증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대란 초래하는 집회·시위
3일 경찰에 따르면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일 임금 삭감안 철회 촉구 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오후 1시30분부터 예정돼 있었으나, 노조가 도로에 무대를 설치하자 경찰은 오전부터 차도를 통제했다. 경찰 추산 약 5100명의 노조원이 도로를 사실상 독점한 채 행진하는 동안 을지로 등 인근 버스정류장에서는 시민들이 버스를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평일 도심 집회가 차량 정체와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경찰은 막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집회·시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자체가 기준이 허술하고 모호해 엄격한 집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 도로에서 관할 경찰서장이 차량 소통을 근거로 집회를 금지 혹은 제한할 수 있지만 법원에서 번번이 기각되는 실정이다.지난해 7월 서울고법은 민주노총이 퇴근시간대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에 대한 경찰의 금지 통고를 무효화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2개 차로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퇴근시간대인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서울행정법원에 금지 통고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냈고, 경찰이 퇴근시간대 교통량 조사 자료까지 제출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모든 도심 집회를 허용하는 추세다.
○‘광화문~용산’ 길어진 집회 동선
최근 들어 경찰은 길어진 시내 집회 동선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대형 집회는 청와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집중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2022년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집회 동선이 광화문에서 용산까지 약 4㎞로 늘어나면서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불편도 커졌다. 늘어난 집회·시위 동선에 서울역 등이 포함되면서 광역버스가 남산터널로 빠져나가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일부 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전철 이용을 권유할 때도 많다. 경기 화성에 사는 이태규 씨(39)는 “퇴근시간에 집회가 열리면 동탄행 M버스가 서울 도심을 빠져나가지 못해 경기도민은 제때 퇴근을 못한다”며 “자기들 이익을 위해 벌이는 집회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도심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은 커지고 있지만 서울시와 경찰 등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집회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 시민들이 미리 알기 어렵고, 대형 집회가 열리는 장소에 우회로 안내도조차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김다빈/조철오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