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 발을 내딛기로 결심했다” [서평]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어크로스
432쪽|2만2000원
Getty Images Bank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눈이 멀어가는 중이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는 미국 작가 앤드루 릴런드의 책이다. 40대인 그는 10대 시절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조금씩 시력이 감소해 실명에 이르는 유전성 질환이다. 아들의 졸업식과 아내의 미소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슬픔에 시달리던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살게 될 ‘눈먼 자들의 나라’에 과감히 발을 내딛기로 결심했다. 아직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자신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고 릴런드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곤 했다. 그러나 차로 사람을 칠 뻔하고, 어제 놓아둔 컵을 찾지 못하면서 자신의 시각장애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는 수치심을 이겨내고 지팡이와 함께 외출을 시도했다.
아내 릴리는 남편이 지팡이를 펼치자 당혹스러워했다. 릴런드가 지팡이를 짚으며 아들 오스카를 안고 가자, 사람들은 ‘저 눈먼 남자가 아기를 죽이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현실과 편견은 그에게 기대되는 보호자, 양육자, 남편, 아버지라는 역할을 좌절시켰다. 자기 무의식 속에 자리한 ‘가부장이 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볼 수 없다는 것은 곧 무능하다는 것’이란 사회 통념을 깨닫게 했다. 릴런드 가족은 이런 통념이 사라진 곳에서 돌봄과 사랑의 방식을 찾았다. 아내는 릴런드가 넘어지지 않게 자기 신발을 항상 옆으로 치워두고, 편하게 음식을 찾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정리했다. 릴런드는 점자를 배워 예전처럼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매끄럽게 정리된 세계가 아닌 불편한 문제들이 산적한 세계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다.

책은 릴런드가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배워가며 사랑, 가족, 예술, 기술, 정치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는 과정을 담았다. 올해 퓰리처상 회고록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