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꽃을 피우는 사랑의 힘, 그곳이 지옥일지라도…'하데스타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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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겨울을 멈추고 봄을 불러올 노래를 쓰는 데 매진했던 음유 시인 오르페우스는 돌연 기타를 둘러메고 지하 세계 '하데스타운'으로 향했다. 몽상에서 깨고 나니 사라진 아내.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다. 그저 가난한 현실을 스스로 등지고 떠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오는 것, 그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다룬다.인간과 뮤즈의 혼혈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는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지녔지만,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봄을 불러올 노래를 만드는 데 푹 빠져 마음만은 풍족했던 그와 달리 지독한 현실은 사랑의 불씨를 짓눌렀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배고픔도, 추위도 없는 풍족한 세계를 꿈꾸며 하데스의 손을 잡았다.
지상에서 생활하던 중 하데스에 납치돼 지하 세계로 간 페르세포네는 봄과 여름은 지상에서, 가을과 겨울은 지하에서 머무른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태양,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꽃을 동경하는 이 여신은 '하데스타운'의 차가움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사랑이 없는 남편 하데스와 지하 세계는 바뀌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라면 다를 것 같다. 음악 재능보다 더 뛰어난 그것. 순수한 인간성과 사랑의 마음.작품은 지상을 나타내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지하를 그리는 페르세노페의 이야기가 각각 그려지다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추위와 가난에 허덕이는 인간 세계와 냉혹한 자본가 하데스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간으로 표현된 지하 세계, 상반된 배경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연출의 힘이 놀랍다.
우선 이야기꾼이자 두 세계를 잇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두어 이질감 없이 극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면서도 계속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는 관객들을 오르페우스에 동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며 두 배경이 연결되는 순간에는 무대에 개방감을 주며 극적인 효과를 냈다. 작품의 프로덕션 넘버(하이라이트 격의 넘버)에 해당하는 이 장면에서 노래하는 오르페우스 사이를 진자 운동하는 조명이 크게 왔다 갔다 하며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단단하게 발을 내딛는 인물의 내면과 용기를 극대화했다. 이미 오르페우스에 감정 이입을 한 관객들이 그와 함께 지하 세계를 마주하는 핵심적인 장면을 힘 있고 웅장하게 표현해 임팩트를 남겼다.재지한 음악은 극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자칫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는 성 스루 뮤지컬(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임에도 뉴얼리언스 재즈, 아메리칸 포크, 블루스 등 다채로운 선율이 그 장벽을 깨부순다. 피아노, 첼로,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바이올린, 트롬본으로 구성된 7인조 라이브밴드는 시각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배경과 다소 진지한 극의 주제를 흥겹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똘똘한 장치다.결말의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인간성을 상실한 하데스타운에 꽃을 피웠고, 차갑게 굳었던 하데스의 마음마저 녹였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서로를 향한 열정을 되찾았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지하 세계를 빠져나갈 기회까지 준다. 조건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것. 오르페우스가 한 번이라도 에우리디케를 돌아보면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하데스 타운으로 끌려간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내포한 미션이다.
어두운 무대, 바닥에서는 턴테이블이 돌며 지상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이내믹하게 표현해 긴장감을 준다. 신화 속 이야기와 다를 바 없이 결말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비극'이라고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극 말미 사랑과 함께 '희망'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가 고개를 든다. 헤르메스는 말한다. "중요한 건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하데스타운'은 오는 6일 서울 무대를 마치고,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다룬다.인간과 뮤즈의 혼혈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는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지녔지만,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봄을 불러올 노래를 만드는 데 푹 빠져 마음만은 풍족했던 그와 달리 지독한 현실은 사랑의 불씨를 짓눌렀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배고픔도, 추위도 없는 풍족한 세계를 꿈꾸며 하데스의 손을 잡았다.
지상에서 생활하던 중 하데스에 납치돼 지하 세계로 간 페르세포네는 봄과 여름은 지상에서, 가을과 겨울은 지하에서 머무른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태양,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꽃을 동경하는 이 여신은 '하데스타운'의 차가움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사랑이 없는 남편 하데스와 지하 세계는 바뀌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라면 다를 것 같다. 음악 재능보다 더 뛰어난 그것. 순수한 인간성과 사랑의 마음.작품은 지상을 나타내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지하를 그리는 페르세노페의 이야기가 각각 그려지다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추위와 가난에 허덕이는 인간 세계와 냉혹한 자본가 하데스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간으로 표현된 지하 세계, 상반된 배경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연출의 힘이 놀랍다.
우선 이야기꾼이자 두 세계를 잇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두어 이질감 없이 극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면서도 계속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는 관객들을 오르페우스에 동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며 두 배경이 연결되는 순간에는 무대에 개방감을 주며 극적인 효과를 냈다. 작품의 프로덕션 넘버(하이라이트 격의 넘버)에 해당하는 이 장면에서 노래하는 오르페우스 사이를 진자 운동하는 조명이 크게 왔다 갔다 하며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단단하게 발을 내딛는 인물의 내면과 용기를 극대화했다. 이미 오르페우스에 감정 이입을 한 관객들이 그와 함께 지하 세계를 마주하는 핵심적인 장면을 힘 있고 웅장하게 표현해 임팩트를 남겼다.재지한 음악은 극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자칫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는 성 스루 뮤지컬(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임에도 뉴얼리언스 재즈, 아메리칸 포크, 블루스 등 다채로운 선율이 그 장벽을 깨부순다. 피아노, 첼로,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바이올린, 트롬본으로 구성된 7인조 라이브밴드는 시각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배경과 다소 진지한 극의 주제를 흥겹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똘똘한 장치다.결말의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인간성을 상실한 하데스타운에 꽃을 피웠고, 차갑게 굳었던 하데스의 마음마저 녹였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서로를 향한 열정을 되찾았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지하 세계를 빠져나갈 기회까지 준다. 조건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것. 오르페우스가 한 번이라도 에우리디케를 돌아보면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하데스 타운으로 끌려간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내포한 미션이다.
어두운 무대, 바닥에서는 턴테이블이 돌며 지상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이내믹하게 표현해 긴장감을 준다. 신화 속 이야기와 다를 바 없이 결말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비극'이라고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극 말미 사랑과 함께 '희망'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가 고개를 든다. 헤르메스는 말한다. "중요한 건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하데스타운'은 오는 6일 서울 무대를 마치고,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