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차림으로 동료와…" 결국 파면 당한 교수의 반격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속옷 차림 동료와 연구실서 다툼
바지 벗은채 복도 나온 동료…교수 '파면'
상호 비방전 펼치면서 학교 분위기 '저해'
학교 "부적절 관계 의심…중징계 마땅"

법원 "탈의는 상대방이 벌인 행동…징계 안돼
전문가들 "단순 사내추문, 불륜만으로는 중징계 어려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에서 동료와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서로 비방전을 펼치면서 사내 분위기를 흐렸다고 해도 파면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생활을 이유로 징계를 하려면 회사의 업무 수행이나 외부 평판이 심각하게 저해될 수준의 파급력이 있어야 한다는 법원의 최근 경향이 드러난 사건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7월 수도권 모 대학 소속 A교수가 C 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파면처분 무효확인 청구의 소'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A의 손을 들어줬다.

○속옷 차림 동료와 다툼...학교법인 "파면"

C 대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다 2014년부터 교수로 임용돼 학과장으로 근무해오던 A는 2021년 11월 충격적 추문에 휘말렸다. 같은 학과 교수인 B가 밤 9시경 A의 연구실에서 A와 다투다가 바지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복도로 나와 서성이다 다시 연구실로 들어간 것이다. 이후 10분여가 지나 이들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 같은 층에서는 강의가 진행 중이기도 했다.

결국 학교 조사위가 꾸려졌고 CCTV 등을 통해 사건은 사실로 밝혀졌다. A 교수와 B 교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의혹까지 나왔고, A와 B는 서로 진술을 번복하고 비방·험담하는 등 공방이 장기화하기도 했다.

결국 학교법인은 징계위를 개최해 2022년 10월 '품위유지의무 위반, 성실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A교수의 해임을 의결했다. 학교 측은 "①수업 시간인 공공장소에 복도와 연구실에서 바지를 탈의한 속옷 차림의 B와 18분과 함께 있었고 ②해당 교수를 폭행·성희롱했으며 ③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B를 협박 및 회유했고 ④학과장 업무에서도 비정상적으로 B에 의존했고 ⑥B와 수년간 부적절한 관계가 확인됐다"고 징계 이유를 설명하고 최고 중징계인 파면 처분을 내렸다.이에 A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법원에서 A 교수는 징계 사유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B교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A교수는 "B가 무단침입해 일방적으로 악의적인 행위를 한 것"이라며 "B의 의도적 접근에 친밀하게 지냈지만, 품위유지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교원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도 같은 학과 소속 교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수년간 지속했다"며 "서로 험담과 공방을 계속해 징계와 불복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받고 수업 배정과 학과 업무 운영에도 지장이 생기는 등 교원으로서 직무 수행이 어려워져 비위 정도가 무겁다"라고 반박했다.

1심 법원은 학교의 주장 중 객관적으로 확인된 속옷 차림 소동 사건과 부적절한 관계 등 일부만 징계사유로 인정하면 "파면 처분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파면은 교원 지위를 상실하고 퇴직급여를 감액당할 뿐 아니라 향후 수년간 교원 임명이 제한되는 가장 무거운 징계"라며 "A가 20년 넘도록 근무해 오는 동안 징계 전력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처분이 과도하다"라고 판단했다.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한발 더 나아가 학교가 주장한 사유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B교수가 일방적으로 연구실로 찾아와 하의를 탈의한 행동에 A교수가 직접 관여했다 보기 어렵다"며 "설령 그런 행동이 A교수와 갈등때문이더라도 어디까지나 'B 교수'의 돌발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A에 대한 징계사유로 삼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A가 즉시 자리를 피하는 등 제지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고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A가 당황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최종 확정됐다.

○불륜은 해고해야 '사이다?'..."무조건 징계 사유 아냐"

기본적으로 사내 연애 등 근로자의 사생활 문제는 징계 사유가 되기 어렵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이성 교제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사업장 내에서 비윤리적인 이성 교제를 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고용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사생활이 직장 문화·분위기를 저해하거나 업무상 차질을 빚게 하는 경우 또는 기업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 법원은 "구체적인 업무 저해 결과가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해당 비위행위가 기업의 사회적 평가에 미친 악영향이 중대하다고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라면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최근엔 회사의 업무나 외부 평판을 해칠 수 있을 정도로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엔 해고 등 중징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다.

앞서 A교수의 경우 사내 불륜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은 점, 추문 사건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본인이 주도하지는 않은 점, 학교법인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로 사건이 널리 퍼져나가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당사자들이 '교수'로 사회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더 큰 직군이고 추문이 다소 충격적인 점을 고려해도 '파면'이라는 중징계는 함부로 내려서는 안된다는 법원의 다소 '관대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 내 사생활 문제는 사안별로 파급력에 따라 징계 가능성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며 "단순 불륜 이상으로 회사 업무에 지장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거나 언론보도 등으로 회사 명예가 공공연하게 실추됐된 경우까지 가야 징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징계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의 진술 외에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사업주가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