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부터 색감까지… 방구석 1열보단 극장이 어울리는 ‘전,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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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 란’ 리뷰
오는 11일 넷플릭스 공개
OTT 영화다운 박력 있는 전개
입체적 캐릭터로 뻔한 소재에 힘 더해
때마다 나오는 ‘평등’은 화려한 액션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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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은 맞서 싸우고, 종려는 흔들린다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배부른 양반과 굶주린 노비,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는 왕의 측근과 남쪽으로 내려가 맞서 싸우는 의병 등 영화 내내 이분적 대비가 드러나는 대결 국면이 전체적인 얼개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징해진다. 두 사람이 전쟁 속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쉼표를 사이에 둔 글자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면 ‘어지러운 상태’를 뜻하는 난(亂)은 흐릿하다.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난 터라 적이 분명치 않다. 종려의 삶에서 명확한 건 그의 신분과 가지런한 옷매무새뿐. 대대로 무과급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검을 들기 싫고, 번번이 과거에 떨어져 몸종에게 맡겨야 할 만큼 실력에 자신도 없다. 면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버지와 실망하는 천영 사이에서 한숨 쉬고, 친구로 여기는 노비를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 부르는 아내에게 씁쓸한 농담이나 던지는 게 전부다. 가족을 몰살한 주범을 천영으로 오해해 그를 쫓지만, 늘 분노와 우정 사이에서 번민한다. 천영, 종려와 모두 싸워 본 왜장 겐신(정성일 분)이 “너희는 결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며 칼끝에 실린 분노의 무게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는 돌고 돌아 종려와 천영이 재회하며 최종장에 돌입하지만, 왜장 겐신까지 함께 칼을 섞는 점은 그간 비슷한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입체적인 장면이라 흥미롭다. 종려와 천영의 오해와 반목엔 신분제라는 구조적 병폐도 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엮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종일관 강렬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되던 것과 달리 최종장 무대가 회색 해무가 짙게 낀 해변인 점도 인상적이다. 바다와 땅의 경계가 흐릿한 모래사장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같다.
시원하고 박력 있는 전개가 강점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로, 극장과 달리 지루하면 언제나 시청을 그만둘 수 있는 OTT영화 특성이 반영됐다.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강동원이 보여줬던 화려한 장검 액션이 살아있고, 신분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불평등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선조를 연기한 차승원은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에서 이몽학을 연기하며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모습과 오버랩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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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성과 대중성 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지만, 극장에선 만날 수 없다. 오는 11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액션 등 연출이나 미술, 음악 요소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스트리밍 환경보단 스크린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김태원 넷플릭스 코리아 디렉터는 “BIFF 개막작에 선정돼 영광”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서비스를 넷플릭스 구독자가 향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