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쩐의 전쟁'으로 가는 경영권 분쟁…고려아연 앞날이 걱정스럽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경쟁적으로 주식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는 전형적 ‘머니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영풍의 장씨 일가와 고려아연의 최씨 측은 국내·해외를 가리지 않고 사모펀드를 끌어들이고 대규모 차입을 통해 ‘일단 이기고 보자’에 나서고 있어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지난달 13일 영풍이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선언할 때 주당 매수가격은 66만원이었다. 그동안 양측이 주거니 받기니 올린 가격이 이제 83만원에 이르렀다. 이 가격대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10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양측이 투입하는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공개매수가 83만원 기준으로 보면 MBK·영풍 연합은 당초 66만원 때의 2조원에 비해 5000억원을 더 넣어야 한다. 자사주 매입에 3조1000억원을 쏟아붓는 고려아연은 자체 자금으로 부족해 사모사채로 1조원, 기업어음(CP)으로 4000억원을 조달했다. 여기에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이 4000억원을 태우기로 했다. 1조7000억원 규모의 차입한도 계약도 맺었다.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세계 1위 비철금속 업체인 고려아연의 펀더멘털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양측이 동원한 사모펀드와 대규모 차입은 언젠가 고려아연이라는 사업체를 통해 뽑아내야 할 돈이다. 대규모 배당으로 미래 투자 재원이 고갈될 수 있고 핵심 자산 매각이 이뤄질 수도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 진출을 앞둔 상황이다.

경영권 인수가격이 평소 시세를 훨씬 넘어서는 주가로 책정돼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자칫 1990년대 후반 대농과 신동방그룹이 미도파백화점을 둘러싼 적대적 인수합병(M&A) 전쟁에 나섰다가 양측 모두의 공멸로 끝난 사태가 재연되지 말란 법도 없다. 양측 사모펀드는 도산하는 일이 없겠지만, 고려아연처럼 국내 핵심 공급망의 한 축을 맡은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다면 국민 경제 전체로 큰 손실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