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없앨 '뇌지도'…1000배 빨리 완성시킬 '비장의 무기'

창간 60 특별기획
글로벌1위 퓨처테크 최전선을 가다

(2) '뇌세포 맵' 구축 중인
앨런연구소·아마존웹서비스
미국 시애틀 웨스트레이크에 있는 앨런연구소가 인간 뇌 지도를 그리는 대형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2008년이다. 당시만 해도 초안을 완성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지난 1일 앨런연구소는 예상보다 이르게 첫 데이터를 공개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을 사용해 수십조 개의 시냅스 정보를 읽어내는 속도를 1000배가량 높인 덕분이다.
지난달 시애틀에서 만난 피터 리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소 총괄사장은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의사는 도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MS 연구소가 가장 공들이는 것도 의료와 AI의 결합”이라고 강조했다. 시애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의료와 AI의 결합이 이뤄지는 곳이다. MS와 AWS의 핵심 두뇌가 모두 이곳에 집결해 있다.피터 리 사장 등 AI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2차 AI 빅뱅’이라고 부른다. AI 가속기(반도체),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전력 등 인프라 그리고 챗GPT 같은 개인을 겨냥한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지금까지 AI산업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AI와 기존 산업을 결합한 ‘엔터프라이즈 AI’가 주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 AI가 대표적인 분야다. 2003년 10억달러에 달한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비용은 1000달러 미만으로 감소했다. 20년 만에 100만 배 하락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5조원 수준이던 의료 AI 시장은 2030년까지 25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최근 애플과 메타도 시애틀에 지사를 세우고 의료 AI 경쟁에 합류했다.

AI '2차 빅뱅'은 의료, 250兆로 커진다

미국 시애틀 앨런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인공지능(AI) 플랫폼을 활용해 뇌세포를 분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앨런연구소 연구원이 뇌지도를 만들기 위한 뇌 조직 샘플을 들어 보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앨런연구소 제공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중심가에서 차로 10분을 달리면 앨런연구소가 나온다.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가 2003년 설립한 비영리기구다. 이곳에서 수행 중인 ‘앨런 뇌지도’ 프로젝트는 전 세계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데이터로 꼽힌다. 앨런연구소가 860억 개 신경세포(뉴런)와 이들을 연결하는 약 600조 개 시냅스가 주고받는 신호를 분석할 수 있는 건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인공지능(AI) 플랫폼 덕이다. 뇌지도 구축 속도를 1000배 이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중순 앨런연구소에서 만난 테신 시아드 AWS 헬스AI 총괄매니저는 “2028년까지 뇌지도의 밑그림을 그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600조 개 시냅스 정보 분석

AI와 바이오 혁명의 결합은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패권국이 가장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는 전장이다. 미국은 중국의 광범위한 생체 데이터 수집을 막기 위해 생물보안법을 마련했다. 싸움의 방식은 누가 얼마나 더 많은 데이터를 적은 비용으로 분석할 수 있느냐다. AWS는 연구기관, 대학, 병원 등에 AI 도구와 데이터 분석 플랫폼, 클라우드 인프라 등을 제공하며 이 전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뇌지도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2026년까지 약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뇌지도를 만드는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뇌 질환을 정복하기 위해서다. 앨런연구소와 AWS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시아드 매니저는 “뇌와 관련된 모든 유형의 데이터를 통합한다는 것이 다른 연구소와의 차별점”이라고 했다.

쇼아입 무프티 앨런연구소 데이터 및 제품엔지니어링 책임자(기술 경영 임원)는 “뇌 정보는 세포 모양 등 형태학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기생리학적 데이터 등 서로 다른 모달리티(텍스트, 음성, 이미지, 비디오 등 다양한 유형의 AI 학습용 데이터)로 이뤄져 이를 멀티모달이 가능한 생성형 AI로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AWS는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의료 이미지를 분석하는 AWS 헬스이미징 등의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전체 등 대규모 생물학 정보를 분석하는 AWS 헬스오믹스도 아마존의 주요 바이오 도구다.그간 인간 뇌지도를 작성하는 데 큰 한계로 지적돼 온 데이터 부족 문제도 AI가 해결할 수 있다. 윤리적 문제 등으로 인간 뇌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았다. 무프티 책임자는 “쥐와 원숭이 등 동물 뇌 정보를 기반으로 인간 뇌 정보를 예측할 수 있다”며 “진화적으로 많은 부분이 보존돼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2028년까지 기본적인 뇌 지도를 생성하는 것이 AWS와 앨런연구소의 목표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위주로 데이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무프티 책임자는 “뇌지도를 통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파악하면 근본적인 뇌 질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체컴퓨터’ 시대 열릴 수도

AWS를 비롯해 AI 빅테크 기업이 꿈꾸는 의료 AI의 목표는 인간 정신을 클라우드 규모의 연산과 정보에 연결하는 것이다. DNA 가닥이 연산하고, 인공 세포가 작동하는 생체컴퓨터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합성 생명체의 미래다.

먼 훗날의 얘기지만 AWS는 실현을 위해 데이터 수집에 혈안이다. 올해 기준 세계 매출 상위 10대 제약사 중 9곳에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 중이다.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 중 80%가 AWS 고객이다. 이 밖에 50개가 넘는 글로벌 유전체학 프로젝트와도 연결돼 있다. 시아드 매니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AI 알고리즘은 2017년 75개에서 2023년 700개로 늘었다”며 “글로벌 보건에서 AI 시스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최근에는 특정 기술에 특화된 소형 대규모언어모델(SLM) 기반 의료 AI 확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AWS가 5조4000억원을 투자한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이다. 생성 AI인 아마존 베드록을 활용해 대규모언어모델(LLM) 클로드 3의 SLM 버전인 ‘클로드 3 하이쿠’를 개발했다. 의료진이 임상 연구 중 대화하는 내용을 기록하는 플랫폼이다.

시애틀=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