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AI기술 격변이 두렵다는 공대교수

기존 교육·산업 생태계 '흔들'
AI발 '지능의 시대' 대비해야

김형호 사회부장
서울의 한 대학 컴퓨터공학과 A교수는 지난 학기 말 프로그래밍 과제를 잘 수행한 한 학생에게 상을 주며 비결을 물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잘 모르고요. 과제에 맞춰 프롬프트를 잘 짜서 챗GPT를 활용한 거예요.” A교수는 고민 끝에 이 학생에게 학점도 최고점을 줬다고 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능력도 실력이라는 판단에서다.

컴퓨터공학 산학협력 전문가로 꼽히는 B교수는 “나였다면 학점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프로그래밍 수업의 취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를 이해시켜 응용력을 키우는 것인데 AI를 이용한 과제 제출은 이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기본 원리를 배우는 단계에서부터 AI에 의존해서는 시행착오를 거쳐 지식을 체화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어 ‘사상누각’식 배움이 된다는 게 B교수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 역시 “요즘 같은 AI 기술 급변 상황은 처음 겪는다. 학생들을 기존 커리큘럼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 3.5 모델을 선보인 뒤 채 2년이 되지 않은 기간 AI 기술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 공개된 ‘GPT-01’ 모델은 인간의 명령어를 수행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추론 능력을 갖춘 새로운 차원의 AI로 불린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추론 능력 외에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STEM) 분야에서는 대학원생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췄다. 오픈AI가 공개한 벤치마크 기준에 따르면 ‘01’의 수학 능력은 국제올림피아드 수학 문제 기준으로 83.3%의 정답률을 보였다. 기존 GPT 4o의 13%를 크게 뛰어넘는다. 코딩도 상위 89%로 웬만한 전문가 수준에 가깝다. 정식 버전 이전 단계인 프리뷰 모델만으로 대입 수학능력시험 수학 문제 30문항 가운데 28개를 풀어낼 정도다.

2015년 설립된 오픈AI의 기업 가치는 불과 9년 만에 2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주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약 8조원(66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경쟁 AI업체에 대한 투자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 정도로 시장 주도권에 자신감을 보인다. 엄청난 자금력을 등에 업은 AI의 진화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다.미국 주도의 AI 기술 빅뱅을 바라보는 교육·산업 현장의 시선은 불안하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는데 기민한 대응을 위한 응집력이 보이지 않아서다. 정부가 최근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켜 고성능 AI칩 ‘H100’ 보유 수준을 15배까지 늘려 인공지능 3대 강국(G3)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실행계획과 예산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산업 격변기마다 남다른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1990년대 후반 세계적인 닷컴 붐 때는 세계 최초로 국토 전역에 광케이블을 까는 ‘사이버 코리아’ 전략으로 넘어섰다. 인프라의 고속도로 위에서 대학교수가 창업에 나서고 대기업 직원이 신생 벤처기업에 뛰어드는 ‘야성’의 정보기술(IT)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를 교훈 삼아 정부는 제2의 광케이블인 데이터센터 구축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는 죽어가던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마저 부활시킨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한국의 안정적 전력 공급망과 원전 경쟁력은 글로벌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대학은 산업화 시대의 커리큘럼을 전면 개편해 AI형 인재를 길러내고,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을 찾아내야 한다. AI발(發) ‘지능의 시대’는 국가별 민관 총력전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